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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주간의 바이브 코딩 (3.7 ~ 3.21, 저관여앱 제작 프로젝트을 마치며) 20개의 앱보다 더 오래 남은 것은 몇 가지 기준이다. 내가 2주 동안 만든 것은 단순한 업무용 도구였지만, 정작 배운 것은 무엇을 앞에 두고 무엇을 줄일지, 어디까지 AI에게 맡기고 어디서부터는 사람이 책임져야 하는지에 대한 판단이었다.이 프로젝트는 기준을 잡는게 중요하다는걸 깨닫게 만들어준 2주간의 세미나다.https://usekit.netlify.app/ UseKit - Finish small work fast with browser-based toolsBrowser-based tools Finish small work fast Clean text, sign PDFs, convert images, and handle repetitive file tasks without signup. Most wor.. 2026. 3. 21.
아직 누구도 아닌 얼굴들 레고 매장 한쪽에 놓여 있던 투명한 통을 처음 봤을 때, 나는 잠깐 걸음을 멈췄다. 그 안에는 작은 노란 머리들이 가득 담겨 있었다. 처음에는 그냥 장난감 부품이겠거니 하고 지나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시선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통 안을 들여다보니 머리들은 모두 같은 색이었지만 표정은 조금씩 달랐다. 웃는 얼굴도 있었고, 장난스러운 얼굴도 있었고, 무심한 표정도 있었다. 그 얼굴들은 모두 이미 감정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동시에 아직 아무도 아닌 상태였다. 몸도 없고 이름도 없고, 어떤 이야기 속에도 들어가 있지 않았다. 그저 통 속에서 조용히 섞여 있을 뿐이었다.그 순간 묘한 생각이 스쳤다. 이 얼굴들은 마치 정체성이 만들어지기 전의 얼굴들처럼 보였다. 누군가의 손이 와서 하나를 .. 2026. 3. 16.
파를 싫어하는 아이를 위해 찾은 계란볶음밥 이 볶음밥 레시피는 초록초록한 파를 싫어하는 아이 덕분에 알게 된 방식이다. 아이가 유치원때나, 저학년 때는 양조간장과 버터, 혹은 참기름을 자주 썼다.생각해보니 내가 유년기였던 시절도 그 비슷한 류의 밥을 어머니께서 해 주셨다. 그 시절의 맛도 틀림없이 좋았지만, 파가 빠지면 어딘가 맛과 향이 비는 느낌이 들었다.이 아이는 지난해 나이가 벌써 두자릿수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초록초록한 것을 경계하곤 한다. 그래서 파는 보이지 않게 하고, 향만 남기는 쪽으로 조금씩 타협하다 보니 우리 집 볶음밥은 늘 파기름으로 시작하게 되었다. 예전에 할 때는, 계란을 일일히 깨서 해왔건만.. 요즘은 쉽게 요리란이란 것을 구할 수 있게 되었다.껍질 처리할일 없고, 계란 껍질이 요리에 빠질까봐 걱정이 없어 요.. 2026. 3. 15.
미사용품은 ‘언젠가’의 잔해 창고 문을 열 때마다 특유의 냄새가 나를 반긴다. 종이박스 냄새, 오래된 플라스틱 냄새, 한번 정리해두면 그 자리에 고여버리는 시간의 냄새다. 그 안에는 수많은 다이캐스트 자동차들이 있다. 정확히 말하면 모형들이다. 책상 위에서만 달릴 수 있는 축소된 모형 차들. 스티어링 휠을 감는대로 바퀴가 돌아가고, 도장이 빛나고, 헤드라이트가 그럴듯한 차들. 스스로 굴러갈 힘이 없다일 뿐, 구현도 매우 잘 되어 있다. 요즘엔 그 차들을 잘 구경하지 않는다. 딱히 보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라, 보고 나면 어딘가 맘이 조금 이상해져서다. 창고는 취미를 보관하는 장소가 아니라, 내가 언젠가 다시 살기로 했던 나를 보관하는 장소처럼 느껴진다. 문을 닫고 돌아서면, 안도감 같은 게 오히려 먼저 온다. 그것은 “오늘은 마주.. 2026. 2. 22.
문을 반쯤 열어두는 사람 오랜만에 SNS를 다시 설치했다. 페이스북, 인스타… 딱 그 정도? 가끔 이걸 한번씩 설치해서 접속하는 이유는 해킹이 걱정돼서이다. 뭐가 털렸는지, 어디에 로그인돼 있는지, 이상한 활동은 없는지, 그리고 비밀번호를 바꾸고, 2단계 인증을 켜고, 로그아웃 기록을 훑어보는 것. 어떤 면에선 점검이고, 어떤 면에선 정리기도 하다. 근데 정리만 하려고 들어간 사람치고, 피드 한 번 안 내다보고 나오는 사람은 또 거의 없다. 나도 그랬다.1. 로그인하자마자 뜨는 건 늘 비슷했다.연락처로 찾은 추천 친구, 팔로우 요청들알고리즘이 이어 붙인 관계웃긴 건, 나는 그 목록을 보면서 “어, 얘 요즘 이렇게 사나 보네” 같은 생각을 하면서도, 손은 절대 버튼 위로 안 올라갔다. 궁금하긴 한데, 추가는 싫다. 이유는 간단하다.. 2026. 2. 22.
욕망의 한 단면 집 근처 어느 한 중식요리 전문점에 가면, 칠판에 쓰여진 메뉴판에 ‘욕망의 새우볶음밥’이 있다. 그냥 새우볶음밥도 있는데, 굳이 ‘욕망의’라는 수식이 붙은 메뉴가 저렇게 있다. 가격도 살짝 더 나간다. 그리고 그 차이는 아주 정직하다. 그릇 위에 올라간 새우가 “조금 더”가 아니라 “아주 확실히 더” 많다. 먹기도 전에 눈으로 납득되는 양. 주문한 사람은 대개 첫 숟갈 전에 이미 만족을 시작한다. 그래. 이게 우리가 말하는 욕망이지.! 설명이 필요 없는 확신이다. 사실 이런 흐름이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다. 예를 들어, 겉모습이 그럴듯해서 구입한 샌드위치를 열어봤는데 잘려진 단면에만 속재료가 있고 빵 가장자리 부분이 텅텅 비어 있었다고 가정해 보자. 당혹스러운 기분과 함께, 어딘가 좀 사기당한듯한 느.. 2026. 1. 12.
수와 존재: 작은 마법들 II 11. 998001 이 만든 행진 (1/998001)칠판에 이런 분수를 하나 적어보자. 1 / 998001 계산기를 두드리면 숫자가 갑자기 “말”을 하기 시작한다. 여기서 요령은 소수점을 세 자리씩 끊어 읽는 것이다. 1 / 998001 = 0.000001002003004005006007008009010011012013014015…0.000 | 001 | 002 | 003 | 004 | 005 | 006 | 007 | 008 | 009 | 010 | 011 | 012 | 013 | … 숫자들이 줄을 서서 지나간다. 001 부터 999 까지, 마치 “자기소개”를 하듯한 이 행진은, 우연이 아니라 998001 = 999²라는 사실에서 시작된다. 우선 이 익숙한 반복을 꺼낸다. 1/999는 1000의 .. 2026. 1. 7.
가성비 미식이 좀 더 바람직하다고 믿는 이유 최근 ‘흑백요리사2’를 보다가 이런 저런 생각이 들었다. 애시당초 부제가 요리 계급 전쟁 이기도 했고, 회차를 거듭할 수록 시청자의 관점에서 봤을 때 화면 속 수 많은 음식들이 점점 “맛”보다 “구조”로 평가되는 순간들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심사위원 말로는, 정말 미세한 차이였는데...라는 말로 승패가 갈려버린다. 이 와중에 주변에서 흔히 볼수 있는 메뉴이건만, 심사위원 뿐 아니라 대중적 입장에서 직관적으로 맛있을 수 밖에 없는 (- 그리고 주변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 친근한(!) 음식들이, 1:1 매치에서 상대를 압도하는 연출이 나올 때 마다, 반응이 뜨거웠던 것 같다. 물론, 제작자의 취지는 가치 중립적이거나, 오히려 미식가들이 열광할만한 그 뭔갈 소개하고자 하는 취지에 좀더 가깝지 않았을까.. 2026. 1. 7.
휴일에 사람구실하기 휴일은 늘 고민이다. 징검다리 휴일이 있어, 그 사이 하루를 쉬게 되었다. 주말까지 합치니 무려 4일간 쉰다. “드디어 쉰다”는 기쁨은 잠깐, 물가와 환율이 올라 어딜 가기 겁나는 요즘엔 곧바로 “뭘 해야 하지?”라는 불안이 따라온다. 특히 겨울엔 더 그렇다. 기온이 떨어지면 밖으로 나가는 것 자체가 부담이 되고,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시간은 흐르는데 남는 건 없는 기분이 들곤 한다. 그래서 나는 요즘 휴일을 ‘잘 쉬는 날’이 아니라, ‘허무하지 않게 쉬는 날’로 만들려고 한다.핵심은 거창하지 않다. 오히려 거창하면 망한다. 대신 작고 명확한 완료를 만든다. 집에서 며칠 쉬는 날에 필요한 건 ‘계획’이 아니라, 끝이 보이는 행동이다. 그중에서도 제일 체감이 큰 건 침대와 책상 주변 정리다. 이 .. 2025. 12.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