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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로그/관찰일기

아직 누구도 아닌 얼굴들

by 공튼이 2026. 3. 16.

레고 매장 한쪽에 놓여 있던 투명한 통을 처음 봤을 때, 나는 잠깐 걸음을 멈췄다. 그 안에는 작은 노란 머리들이 가득 담겨 있었다. 처음에는 그냥 장난감 부품이겠거니 하고 지나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시선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통 안을 들여다보니 머리들은 모두 같은 색이었지만 표정은 조금씩 달랐다. 웃는 얼굴도 있었고, 장난스러운 얼굴도 있었고, 무심한 표정도 있었다. 그 얼굴들은 모두 이미 감정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동시에 아직 아무도 아닌 상태였다. 몸도 없고 이름도 없고, 어떤 이야기 속에도 들어가 있지 않았다. 그저 통 속에서 조용히 섞여 있을 뿐이었다.

그 순간 묘한 생각이 스쳤다. 이 얼굴들은 마치 정체성이 만들어지기 전의 얼굴들처럼 보였다. 누군가의 손이 와서 하나를 집어 들기 전까지는 아무 역할도 없는 상태. 하지만 누군가가 그 머리를 집어 들고 몸을 붙이고 옷을 입히는 순간, 그 얼굴은 갑자기 하나의 인물이 된다. 탐험가가 될 수도 있고, 도시의 시민이 될 수도 있고, 어딘가의 이야기 속 주인공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그 통은 단순한 장난감 상자가 아니라, 마치 캐릭터들이 태어나기 직전 잠시 머물러 있는 장소처럼 느껴졌다. 무대에 올라가기 전 백스테이지에서 기다리는 배우들처럼, 아직 이름을 얻지 못한 얼굴들이 조용히 모여 있는 공간이다.

멀리서 보면 그냥 노란 점들의 집합이지만, 가까이 들여다보면 각각 다른 표정들이 있다. 같은 모양의 머리들이지만, 어느 하나도 완전히 같은 얼굴은 없었다. 그 모습이 어쩐지 사람들의 모습과도 닮아 있는 것 같았다. 겉으로 보면 비슷한 집단처럼 보이지만, 가까이 들여다보면 모두 다른 표정과 다른 이야기를 가지고 있는 존재들.
그래서인지 그 장면에는 약간의 귀여움과 함께 묘한 기묘함이 섞여 있었다. 얼굴은 분명 인간을 닮았지만 아직 아무 정체성도 갖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마치 수많은 이야기들이 아직 시작되기 전, 조용히 숨을 고르고 있는 순간을 보는 느낌이었다.

나는 그 장면을 사진으로 남겼다. 아마도 그 이유는 단순했을 것이다. 그 통 안에 있던 것은 플라스틱 부품이 아니라, 아직 시작되지 않은 이야기들의 얼굴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쩌면 그 얼굴들 중 하나는 언젠가 누군가의 손에 의해 선택되어, 전혀 다른 세계 속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