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흑백요리사2’를 보다가 이런 저런 생각이 들었다. 애시당초 부제가 요리 계급 전쟁 이기도 했고, 회차를 거듭할 수록 시청자의 관점에서 봤을 때 화면 속 수 많은 음식들이 점점 “맛”보다 “구조”로 평가되는 순간들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심사위원 말로는, 정말 미세한 차이였는데...라는 말로 승패가 갈려버린다.
이 와중에 주변에서 흔히 볼수 있는 메뉴이건만, 심사위원 뿐 아니라 대중적 입장에서 직관적으로 맛있을 수 밖에 없는 (- 그리고 주변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 친근한(!) 음식들이, 1:1 매치에서 상대를 압도하는 연출이 나올 때 마다, 반응이 뜨거웠던 것 같다.
물론, 제작자의 취지는 가치 중립적이거나, 오히려 미식가들이 열광할만한 그 뭔갈 소개하고자 하는 취지에 좀더 가깝지 않았을까? 싶다. 어떤 이에게는 최고의 예술 경험이고, 또 기념일을 완벽하게 만들어주는 한 가지 요소일 수도 있다. 다만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셰프님들이 운영하는 식당의 가격표를 보면, 막상 찾아갈 마음이 쉽게 들진 않는 것 같다. 그 이유는 입맛이 부족해서도, 취향이 얕아서도 아니다. 일반적으로 파인다이닝은 비용도 비용이지만, “자본주의적인 감각”을 경험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1. 미식이 ‘경험 상품’이 되는 순간의 불편함
파인다이닝의 장점은 분명하다. 서비스, 연출, 이야기, 공간까지 포함해 하나의 완성된 경험을 제공한다. 그런데 그 완성도가 올라갈수록, 음식은 종종 ‘상품’의 일부가 된다.
예를 들어, 코스 자체보다 페어링 와인에서 수익이 크게 나는 구조. 혹은 “페어링을 하면 다음 예약이 수월해진다” 같은 소문이 만들어내는 분위기. 사실 여부가 어떻든, 그런 말이 도는 판에서는 음식이 맛 이전에 ‘게임’처럼 느껴진다. 나는 음식이 누군가에게 신호(- 내가 이 정도 소비를 한다 -)가 되거나, 진입장벽(- 예약 난이도, 소비의 수준 -)이 되는 순간에 거리감을 느낀다. 그 순간 미식은 취향이 아니라 체력과 자본의 문제로 바뀐다.
2. 일상에서의 미식은 ‘화폐’가 아니라 ‘감각’으로 열린다
파인다이닝의 세계는 종종, 알고리즘과 리스트와 희소성이 안내한다. 어디가 “뜨는지”, 누가 “가봤는지”, 다음 예약이 “가능한지”. 그러다 보면 맛이 아니라 티켓을 얻는 과정이 중심이 되는 순간이 생긴다.
반면 우리가 일상적으로 맞집을 찾는 탐색 방식은 이와 다르다. “사람이 꾸준히 들어오는 집”, “점심시간에 동네가 몰리는 집”, “메뉴구성이 방문하고자 하는 목적에 맞는 집”. 이건 화폐로만 열리는 세계가 아니라 감각과 관찰로 열리는 세계에 가깝다. 나는 이쪽이 더 좋다. 가진 예산 안에서, 내 컨디션 안에서, 일상과 연결된 방식으로 맛을 발견하는 것이다.
3. 좋은 음식은 대체로 일상에 가까운 곳에 있다
내가 가성비 미식을 좋아하는 건 싸게 먹고 싶어서만은 아니다. 오히려 나는 일상에 붙어 있는 맛을 더 신뢰한다. 그런 연유에서, 프랜차이즈를 오히려 신뢰하는 편인데, 이들은 어느 지역에서든 같은 가격에 먹을 수 있고, 관리가 잘 되는 곳은 지점에 관계 없이 일관적인 맛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매일 장사를 해야 하고, 손님이 한 번이 아니라 두 번, 세 번 다시 와야 하는 집. 화려한 연출 없이도 맛으로 설명해야 하는 집. 그런 곳은 ‘이야기’가 아니라 음식 자체로 설득한다. 가끔은 몇천 원짜리 국물 한 숟갈이, 몇십 만 원짜리 코스보다 더 진하게 남는다. 그건 가격의 문제가 아니라, 음식이 생활 속에서 얼마나 선명하게 작동하는지의 문제다.
예전에 <더 메뉴> 라는 영화를 본적이 있다. 영화 제목과 같이, 어느 한 고급 레스토랑에서의 만찬을 구성하는 코스 메뉴들이 하나씩 나온다. 이 영화를 보고 내 머리에 남은 건, 그 세계가 쉽게 희소성과 과시, 그리고 소비의 규칙으로 굳어질 수 있다는 불편함이었다. 아래 페이지(- 스포 주의 -)에 언급된 표현처럼 이 영화는 관객을 향해 “촌철살인의 난장판”을 벌이고, “영화라는 예술이 던질 수 있는 가장 악랄한 농담”을 끝까지 밀어붙인다.
‘더 메뉴’ 기꺼이 권하는 악랄한 농담
풍요로운 파인다이닝의 특별한 메뉴에 관한 영화 <더 메뉴>는 단순히 오감만 자극하는 미식 영화가 아니다. 그 이상이다.‘여러분께 선사합니다. 더 메뉴(Invite you to experience. The Menu).’ 관객에게
www.vogue.co.kr
그런데 그 악랄함이 묘하게 좋은 이유는, 결국 우리를 다시 음식의 본질로 돌려보내서다. 화려한 코스의 권위가 무너진 자리에서 남는 건 ‘경험 상품’이 아니라, 그냥 손에 잡히는 한 입의 확실한 만족이다. 그래서 나는 이 영화를 보고 나면, “치즈버거를 먹게 될 것” 같다는 결론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4. 가성비 미식은 ‘절약’이 아니라 ‘태도’다
가성비 미식은 단순히 “가격 대비 양이 많다”가 아니다. 내가 말하는 가성비는 주어진 예산 안에서의 최대 만족이다.
- 먹고 나서 “잘 먹었다”가 남는가
- 내 돈을 다시 내고 재방문할 마음이 드는가
- 친구에게 추천할 때 과장 없이 말할 수 있는가
- 특별한 날이 아니어도 자연스럽게 떠오르는가
이 질문에 ‘예’가 많이 붙는 음식이 내게는 좋은 음식이다. 그리고 이 기준은 이상하게도, 종종 비싼 곳보다 합리적인 곳에서 더 자주 충족된다.
5. 기준은 ‘맛을 소비하는 내가’ 편안한가 하는 것
누군가에게 파인다이닝은 최고의 취향이고, 누군가에게는 동경이고, 누군가에게는 예술이다. 그걸 부정할 생각은 없다. 다만 내게 중요한 건 이것이다.
“음식 앞에서 내가 편안한가?”
- 더 써야 할 것 같은 눈치가 없고
- 스스로를 증명할 필요가 없고
- 취향이 자본으로 측정되지 않고
- 먹는 행위가 놀이가 아니라 생활로 이어지는 것
그런 조건에서 나는 더 잘 느끼고, 더 잘 즐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빕 구르망 같은 감각’의 집을 찾는다.
화려함 대신 확실함이 있고, 연출 대신 기본기가 있고, 계절의 이야기 대신 오늘의 한 그릇이 있는 곳. 어쩌면 내게 미식은 “위로 올라가는 경험”이 아니라 일상으로 더 깊게 들어오는 경험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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