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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로그/관찰일기

문을 반쯤 열어두는 사람

by 공튼이 2026. 2. 22.

오랜만에 SNS를 다시 설치했다. 페이스북, 인스타… 딱 그 정도? 

가끔 이걸 한번씩 설치해서 접속하는 이유는 해킹이 걱정돼서이다. 뭐가 털렸는지, 어디에 로그인돼 있는지, 이상한 활동은 없는지, 그리고 비밀번호를 바꾸고, 2단계 인증을 켜고, 로그아웃 기록을 훑어보는 것. 어떤 면에선 점검이고, 어떤 면에선 정리기도 하다.

 

근데 정리만 하려고 들어간 사람치고, 피드 한 번 안 내다보고 나오는 사람은 또 거의 없다. 나도 그랬다.


1. 로그인하자마자 뜨는 건 늘 비슷했다.

  • 연락처로 찾은 추천 친구, 팔로우 요청들
  • 알고리즘이 이어 붙인 관계

웃긴 건, 나는 그 목록을 보면서 “어, 얘 요즘 이렇게 사나 보네” 같은 생각을 하면서도, 
손은 절대 버튼 위로 안 올라갔다. 궁금하긴 한데, 추가는 싫다. 

이유는 간단하다. 알게 될까봐서이다. -_-...

내가 보고 있다는 걸. 내가 아직도 신경 쓴다는 걸 보이는게 싫었나보다.

 

2. ‘흔적’은 왠지 부담스럽다.

팔로우/친구추가가 무서운 이유는 사실 사람이 무서워서라기 보담, 

내 흔적이 밖으로 새어나가는 느낌이 들어서다.

 

한 번 연결되면, 그건 단순히 “나도 너를 본다”가 아니라 “나 지금 여기 있다”라는 신호가 된다.

그리고 SNS의 신호는 생각보다 멀리 간다. 

  • 추천 알고리즘이 내 이름을 밀어올릴 수도 있고
  • ‘서로 알 수도 있어요’에 내가 끼어들 수도 있고
  • 누군가는 “어? 얘 갑자기 왜?”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나는 그게 싫다. 관찰은 하고 싶지만, 관찰자가 된 사실이 기록되는 것이 싫다.

 

3. 예상치 못한 불청객들

이런 성향은 블로그에서도 똑같이 나온다. 누가 댓글을 달면 실은 고맙기도 한데, 동시에 마음이 급해진다.

왜냐면, 그 순간부터 공간이 바뀌어 버리기 때문이다. 

 

내가 블로그를 쓸 때의 감각은
대자보에 뭔갈 큼지막하게 써서 게시하는 느낌이 아니라 서랍에 종이를 넣어두는 느낌에 가깝다.

 

그런데 댓글이 달리면 서랍이 갑자기 거실이 된다. -_-+

그리고 거실엔 사람들이 앉아서 이러쿵저러쿵 이야기를 한다. 내 구역에서.

싫다. 정말로 싫다. 그러면 나는 늘 같은 선택지로 간다.

  • 계정 초기화
  • 잠수
  • 조용히 문 닫기

극단적이긴 한데,
이게 제일 빠르고 확실하게 내 구역을 회복하는 방법이라서

그리고 이곳을 내 폰으로 가끔 보여는 주지만, 아는 사람에게 알려주지 않는 이유다.

 

4. 나는 몰아서 쓰고, 오래 쉬는 사람이다

그리고 또 하나. 이건 내가 글을 쓰다가 발견한 것인데.. 나는 뭔가를 올릴 때 늘 몰아서 한다.

하루에 몇 개씩 연달아 올리고, 그 다음엔 1년 동안 잠잠. 처음엔 나도 웃겼다.
왜 이렇게 꾸준함이 없을까 싶기도 하지만, 그냥 리듬이었다.

 

나는 매일 조금씩 흘려보내는 타입이 아니라, 쌓아두다가 어느 순간 터뜨리는 타입이다.

  • 평소엔 관찰하고
  • 머릿속에 저장하고
  • 말을 아껴두다가

임계치 넘는 날에 정리+배출 모드로 폭발한다. 그리고 끝나면 “아… 할 말 다 했다.” -> 방전.

그래서 글을 자주 다시 읽지도 않는다.
다만 필요할 때—
다시 로그인할 일이 생겼을 때—
한 번씩 꺼내 본다.

그 정도면 충분하다.

 

5. 이곳은 내가 좀 길게 머무를 수 있는 방이 되었으면 좋겠다.

SNS는 광장이고, 나는 광장에 오래 서 있지 못한다.

나는 ‘소통’을 원해서 글을 쓴다기 보담, ‘보관’을 원해서 글을 쓴다.

그리고 댓글은 못 달게 해놨다. 이건 무례가 아니라 내가 나를 지키는 방식이다.

  • 방문은 가능하지만
  • 난입은 불가능한 곳
  • 조용히 남겨두고
  • 필요할 때만 다시 꺼내 읽는 곳

“미래의 내가 다시 찾을 수 있게 정리된 공간”이다.

 

6. 나는 섬이 아니라, 조금 두꺼운 문을 가진 집이다.

누군가 내 사주가 섬 같다고 말했는데
글쎄. 섬까지는 모르겠고. 나는 그냥 문이 있는 집 같다.

  • 필요할 때는 열고
  • 원치 않을 때는 닫고
  • 집 안의 분위기는 내가 지키고 싶다

그래서 SNS도 반쯤만 열어두고, 사람은 들이지 않은 채
세상 소리만 잠깐 듣고 나온다.

오늘도 그렇게 문을 반쯤 열어두고 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