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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이동/국내

평창 육백마지기, 노을 보러 갔다가 별까지 보고 온 날

by 공튼이 2026. 6. 13.

주중, 조금 충동적으로 여행계획을 잡았다. 평창 미탄면의 육백마지기라는 곳이다. 부지런히 움직이는 여행이 아닌, 점심먹고 오후에 출발, 평창읍에서 간단히 밥을 먹고, 해질녘 육백마지기에 올라가 노을만 보고 돌아오는 정도의 계획이었다. 이 여행은 사실 전에, 만항재 드라이브 했던것 처럼 “나를 조금 멀리 데려가보자” 란 생각에 가까웠다. 그리고 이곳 역시 고산지대여서 안전운전과 여정에 제법 인내를 요하는 곳이다.

 

1. 생각보다 조용했던 평창읍내

평창읍에 도착해서 조금 걸어봤다. 오늘의 목적지인 육백마지기 도착 전 간단하게 끼니를 해결해야 한다. 그런데 점심을 많이 먹어서 그런지 눈에 들어오는 가게가 많지 않았다. 깔끔해 보이는 식당은 2인분 이상 메뉴가 많았고, 겨우 찾아둔 막국수집은 하필 휴무였다.

 


잠깐 동안 패닉이 왔다. 하아, 여기서 저녁을 어떻게 해결하지 ㅠㅠ 싶었다. 와보니 평창읍은 관광지라기보다, 정말 조용한 생활 읍내 느낌이다. 도시인이 느낀 첫 인상으로 살짝 과장을 더하면 인프라의 사막화 라는 단어가 떠오를 정도다. 일단 화장실이 급하니 근처 버스터미널을 활용해 본다.

 

 

그래도 이 근처 전통시장이라도 있어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시장 안쪽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가게 중 하나에 앉아 메밀전병과 메밀부치기를 먹었다. 처음엔 그냥 간단히 배만 채우자는 생각이었는데, 막상 먹어보니 이게 꽤 괜찮았다. 

 


얇은 메밀부치기, 속이 찬 메밀전병. 막 화려하진 않지만 평창에 도착했다는 느낌을 주는 음식이다. 부침개 속 배추가 소금에 절여져 있어선지.. 간이 따로 필요가 없다. 길거리 음식인 창펀과 비슷한 느낌..? 그런데 생각보다 배가 너무 불렀다. 두장에 1인분이라 해서 먹어보니, 생각한것 보다 양이 많다.

 

 

2. 해질녘 육백마지기

배를 조금 가라앉히고 육백마지기로 향했다. 길은  나혼자 간게 다행이지 않을까 싶을정도로 험했다. 비포장도로 구간도 꽤 오래 타야하고 가파른 길이긴 했지만, 목적지에 가까워질수록 분위기가 달라졌다. 차창 밖으로 고도가 올라가고, 바람이 세지고, 풍경이 확 트였다. 도착했을 때는 이미 해가 낮게 기울고 있었다.

 


풍력발전기 뒤로 노을빛이 걸려 있고, 산 사면에 샤스타데이지 꽃들이 하얗게 피어 있었다. 그 풍경을 보는 순간, 읍내에서 느꼈던 애매함이 조금 사라졌다. 이 꽃은 생김새가 계란후라이 같기도 하다.

 

 

역시..이걸 보러 온 거였지.. 육백마지기는 낮에 보면 꽃밭과 초원의 장소겠지만, 해질녘에는 조금 다른 느낌이다.

 

 

풍력발전기는 실루엣이 되고, 산 능선은 겹겹이 어두워지고, 하늘은 주황에서 분홍, 보라, 남색으로 천천히 바뀐다.

 

 

이날 바람이 꽤 강했다. 사진으로 보면 평화로운 꽃밭인데, 실제로는 바람이 계속 불고 춥다. 꽃들은 흔들리고, 풍력발전기는 천천히 돌고, 사람들은 노을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다.

 

노을 보러 온 사람도 있고, 아예 별을 보려고 기다리는 사람들도 있는 듯했다. 해가 내려갈수록 차가 빠지기보다 오히려 들어오는 차들이 더 많아지는 게 신기했다. 처음엔 의아했는데, 곧 알 거 같기도 했다. 여기는 노을이 끝나면 바로 끝나는 곳이 아니라, 밤하늘을 기다리는 곳이기도 하니 말이다.

 

3. 해가 진 뒤의 육백마지기

해가 거의 넘어가자 풍경은 빠르게 어두워졌다. 산길과 꽃밭은 검게 가라앉고, 멀리 산 능선 위로만 분홍빛 잔광이 남았다.

 

 

그 시간의 풍경이 참 좋았다. 낮의 육백마지기가 “예쁜 곳”이라면, 해 진 뒤의 육백마지기는 조금 더 조용하고, 쓸쓸하고, 멀리 온 느낌이 강했다. 사진으로는 다 담기 어렵지만, 그때의 색은 오래 기억날 것 같다.

 

 

 

4. 별자리까지 성공

차 안에서 잠시 몸을 녹였다. 난 분명 바람막이를 걸치고 왔는데.. 이건 뭐 몸에 담요를 휘감고 있어야 할 판이다. 기온은 12도~13도인데 바람이 강해서 반팔 티 + 바람막이 조합으론 오래 서 있기 힘들다.

 

 

그래도 별은 궁금했다. 차 안에서는 별이 잘 보이지 않았는데, 밖으로 나가니 조금씩 하늘에 별이 보였다. 폰으로 야간모드를 켜고 하늘을 찍어봤다. 운 좋게 별들이 꽤 잡혔다. 사진 속 북두칠성이 보였다. 엄지척 별자리라고 한다.

 

 

아무튼 난 그날 육백마지기에서 노을을 보고, 별자리 촬영까진 가볍게 해본 셈이다. 그 순간 더 욕심내지 않아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하산을 준비했다.

 

5. 쉬었다기보다 잘 놀았다

밤 9시쯤 하산을 시작했다. 그 시간에도 올라오는 차들이 있었다. 저런.. 별을 보러 오려는 사람들일 것이다. 나는 당일치기 여행이었고, 집까지 돌아가야 했다. 더 버티면 멋진 밤하늘을 볼 수도 있었겠지만, 그만큼 귀가가 늦어졌을 것 같다. 집에는 11시 50분쯤 도착했다. 씻고 누우니 몸은 고단했지만, 기분은 괜찮았다.

 

흔히 가기전 해왔던 여행의 기대와는 다르게 하루가 막 매끄럽진 않았다. 평창읍에서 식당 찾아 헤매기도 했고, 생각보다 배가 불러 고생하기도 했고, 길이 험해 차는 이래저래 흔들리는데다, 산 위에서는 바람이 너무 세서 춥기도 했다. 그런데 그래서 더 기억에 남는다. 그냥 오후 출발, 평창읍 시장에서 메밀전병 먹고, 해질녘 육백마지기에 올라가 데이지와 풍력발전기를 보고, 해가 진 뒤 별자리까지 찍고 돌아왔으니 이 정도면 충분하다.

 

어제는 그냥 쉰 날이 아니었다. 제대로 놀고 온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