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볍게 나홀로 드라이브나 하고 오자는 마음으로 길을 나섰다. 어디까지나 짧은 드라이브(약 50Km 거리)고, 딱히 대단한 여행을 계획한 것도 아니다. 도착하면 좋아보일것 같은 그런곳은 또 대부분 길이 막히거나 주차 스트레스가 있게 마련이다. 그래서 고즈넉한 그런곳을 찾다 알게됬다. 그런데 막상 도착해보니, 공세리성지성당은 생각보다 오래 마음에 남는 곳 같다. 성당 하나를 보고 돌아오는 장소라기보다는, 언덕과 숲, 오래된 벽돌 건물, 순교의 기억과 조용한 기도 공간이 함께 놓인 작은 성지였고 그곳을 평화로워 보이는 작은 농촌 마을이 품고있었다.
오늘 볕은 뜨거웠고, 공기는 여름에 가까웠다. 그래도 그 안에서 걷는 시간은 이상하게 쾌적했다. 낯선 곳에 와 있다는 감각, 그리고 내가 나를 데리고 어딘가에 도착했다는 감각이 있어 좋다.
1. 도착

사진 속 표지판은 별것 아닌 안내물처럼 보이지만, 이날의 짧은 여행은 여기서 시작됐다.

낯선 곳에서 가장 먼저 만나는 표지판은 늘 조금 특별하다. “여기가 맞다”고 말해주는 첫 장면이기 때문이다.
2. 마을길

성당으로 향하는 길은 생각보다 소박했다. 관광지 특유의 과장된 입구나 번쩍이는 안내 시설보다는, 시골 마을 안쪽으로 조용히 들어가는 느낌에 가까웠다. 낮은 집들, 햇볕에 말라가는 골목, 마당의 화분들. 처음에는 “성당은 어디 있는 걸까?” 싶었지만, 그런 소박한 길이 오히려 이곳에 더 잘 어울렸다. 성당을 만나기 전에 먼저 마을을 지나가는 것. 그 순서가 좋았다.
3. 나무 사이로 보이는 성당

길을 따라 걷다 보니, 나무와 언덕 사이로 성당의 첨탑이 보였다. 멀리서부터 한눈에 드러나는 건물이 아니라, 조금 걸어 들어간 뒤에야 모습을 보여주는 성당이었다. 그래서 더 반가웠다. 마치 숲과 마을이 잠시 길을 열어주고, 그 사이로 성당이 천천히 나타나는 것 같았다. 이곳의 첫인상이 바로 위 사진이다. 찾아낸 듯한 성당. 언덕 꼭대기에 조용히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는듯한 오래된 벽돌 건물.
4. 순교성지의 기억
공세리성당은 단순히 예쁜 성당만 있는 곳은 아니다. 곳곳에 놓인 인물상과 조형물은 이곳이 순교성지라는 사실을 조용히 알려주고 있었다.

처음엔 풍경을 보러 왔지만, 걷다 보면 이 장소가 품고 있는 시간이 조금씩 느껴진다. 빛이 좋은 날이었고, 나무는 푸르지만, 그 안에는 가볍게만 볼 수 없는 이야기가 있다. 그래서 공간의 분위기가 어딘가 무겁다. 아름답지만, 마냥 밝기만 한 곳은 아니다.
5. 성모상과 꽃
성모상 앞은 유난히 부드러운 공간이다.

흰 성모상 아래로 꽃들이 놓여 있었고, 그 뒤로는 짙은 초록의 나무들이 배경처럼 서 있다. 엄숙한 성지 안에서도 이곳은 조금 더 따스했다. 뭔가 누군가가 꾸준히 돌보고 있다는 느낌... 기도하는 마음이 꽃과 함께 놓여 있는 듯한 느낌... 암튼 그런 느낌이다. 막 오래 머물지 않아도, 잠깐 바라보는 것만으로 한결 마음이 조용해지는 장면이다.
6. 별 모양 조형물
광장 한편에는 큰 별 모양의 조형물이 있다. 밤에 보면 어떤 느낌일까 싶기도 하다.

7. 성당 정면
정면에서 마주한 공세리성당은 단단해 보인다. 붉은 벽돌과 회색 석재, 아치형 창문과 높은 첨탑이 오래된 시간의 감각을 그대로 품고 있다. 막 크고 화려한 성당은 아니지만, 존재감이 느껴진다.

오래 서 있었고, 앞으로도 오래 서 있을 것 같은 건물. 그런 건물 앞에서는 자연스럽게 발걸음이 느려진다. 사진을 찍고 나서도 조금 더 바라보게 된다.
8. 순교자 현양비
순교자 현양비 앞에서는 다시 한번 이곳의 무게를 생각하게 된다. 성지 내 나무와 꽃이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풍경 뒤에는, 이 장소가 간직한 신앙의 역사와 기억이 있다. 관광지로만 보면 놓치기 쉬운 부분이다.

9. 베네딕토 관
베네딕토 관은 성당과는 또 다른 분위기를 가지고 있다. 입구의 낡은 나무와 벽돌, 오래된 간판과 유리문이 묘하게 정겨웠다. 새것처럼 반짝이는 공간이 아니라, 오랫동안 쓰이고 관리되어 온 공간. 그 점이 딱 좋다.

여행지에서 가끔은 완벽하게 정돈된 모습보다, 시간의 흔적이 남은 장면이 더 마음에 들어올 때가 있다. 베네딕토 관은 그런 쪽에 가깝다.
10. 바위 동굴 안의 성가정상
마지막으로 만난 바위 동굴 속 성가정상은 이날의 마무리로 잘 어울렸다. 흰 조각상은 바위 안쪽에 조용히 서 있었고, 주변의 초록과 돌이 그 공간을 감싸고 있었다.

앞서 본 십자가의 길과 순교성지의 무게가 있었다면, 이곳에는 보호받는 듯한 고요함이 느껴진다. 잠시 멈춰 서서 바라보기에 좋은 장면이었다. 화려하지 않았지만, 이상하게 편안했다. 이곳까지 둘러보고 나니 오늘의 한 바퀴가 완성된 느낌이 들었다.
11. 근처 마을 사진들
이곳 역시 사람들이 마을을 꾸려나간다. 아마도 교인의 집도 있을 것이고 성당에서 근무하시는 분도 계실것 같다. 슈퍼도 있고, 도서관도 있고, 카페도 있다.


돌아오며
처음에는 그저 가까운 곳으로 드라이브를 다녀오자는 마음이었다. 하지만 나름 많은 장면을 남겨주었다. 성당으로 향하던 마을길, 언덕 위에서 모습을 드러내던 첨탑, 성모상 앞의 꽃들, 순교성지의 조용한 무게, 그리고 바위 동굴 안의 하얀 성가정상까지, 막 대단한 여행은 아니지만, 나에겐 좋은 여행이었다. 낯선 곳에 나를 데리고 가서, 천천히 걷고, 보고, 사진을 남기고, 다시 무사히 돌아온 하루. 그 정도면 충분했다. 오늘은 분명히, 잘 다녀온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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