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팬데믹이 끝나자마자 잡은 첫 여행. 비행기 대신 집에서 딱 50km 떨어진 인천 영종도 호텔로 향했다. 1층 로비 한가운데 기이하게 놓여 있는 호박 조형물이 그곳의 상징이라는데—남들이 다 해 보는 '호캉스'를 따라 해 본 결과는, 솔직히 낭만보다 투정이 컸다. 휴대폰에 남은 것은 호박 사진 한 장과 볼링장 스냅숏뿐. 그래서 난 그 투정을 기록으로 남겨 두었다.
해야 할 액티비티와 갈곳이 많다한들, 맘에 드는 것은 한정되어있기 마련이고 모든 것이 맘에 들순 없는 노릇. 뷔페식당에서 많이들 겪어들 보았지 않은가? 어느새 편식하고 있는 자기자신을 말이다. 무튼 체크인보다 더 정확한 것은 식사 시간표라는 사실을 깨닫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칼같이 나뉜 시설 이용 시간, 1박당 한 번만 허락되는 특전들. 남들은 "1박 2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고 했지만, 내 시계는 충분히 느긋했다. 결국 문제는 시간이 아니라 선택이었다.

1. 폭락한 화폐가치
가장 먼저 맞닥뜨린 건 가격의 절벽이었다. 호텔 라운지에서 레스토랑까지, 플라자 푸드코트 2층에서 1층으로, 그리고 폴바셋 냉장고를 거쳐 마침내 밖 편의점에 이르는 가격의 계단. 마치 고도에 따라 공기가 희박해지듯, 호텔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가격은 가파르게 치솟았다.
호텔 라운지 · 레스토랑 ▶ 플라자 푸드코트 2층 ▶ 1층 ▶ 폴바셋 냉장고 = 밖 편의점.
특히 아침이 문제였다. 새벽 6시에 눈 뜨는 사람에게 호텔의 시간표는 가혹하다.
- 06:30 온 더 플레이트 조식 뷔페 — 성인 6만 5천 원
- 09:00 호텔 라운지 — 샌드위치 3만 원대, 햄버거 4만 원
- 09:30 빵집 오픈 — 방금 구웠다는 크루아상이 "평범하게" 7천 원
- 10:00 베이커리 카페 — 샐러드 2만 2천 원, 에클레어 1만 1천 원
- 10:00 폴바셋 — 아들은 타르트를 찾고, 나는 가격표를 껌 씹듯 보게 된다
- 11:00 푸드코트 시작 — 이미 아침이 아니다
"그돈씨." 자동완성처럼 떠오르는 이 말 때문에 결국 조식 뷔페를 이용하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후회 중이다. 한번쯤은 가봄직도 했는데. 덕분에 '6만 5천 원짜리 조식 뷔페'라는 미지의 영역이 자꾸만 뇌리를 간질인다. 씨메르 안에 있는 레스토랑도 만만치 않았다. 2025년 기준 밖에서 1만 5천 원이면 될 돈가스가 3만 원. "물가 두 배의 세계"에 발을 들인 셈이다.
여행의 아이러니는 이런 것이다. 비싸서 안 먹었는데, 결국 '안 먹은 것'에 대한 후회가 남는다. 합리적인 선택을 했지만, 여행에서만큼은 가끔 비합리적인 선택도 추억이 되는 법이다. 6만 5천 원이라는 가격 때문에 포기했지만, 막상 집에 돌아와서는 "그래도 한 번쯤은 경험해볼걸..." 하는 마음이 든다.
도대체 6만 5천 원짜리 조식이 어떨까. 그 궁금증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특별한 순간에서 놓친 경험에 대한 아쉬움은 생각보다 오래 남는다. 가격표 앞에서 망설이던 그 순간들이, 지금은 더 선명하게 기억난다.
결국 먹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 이것이야말로 호텔 여행이 남긴 가장 큰 선물일지도 모른다.
2. 수영장 & 원더박스 - 브로셔 속 가족은 누구일까?
호텔 수영장은 객실당 1회 입장이라고 했다. 마치 귀한 기회라도 되는 양 제한을 두었지만, 정작 나에게는 '단 한 번으로도 충분하다'는 결론만 남겼다. 문제는 내가 물과 친하지 않다는 사실이었다. 아이를 혼자 보낼 수는 없어 마지못해 따라갔지만, 실제로 가장 오래 머문 곳은 풀 밖 선베드였다. 씨메르는 더 화려했다고 들었지만, 나는 발목만 적신 채 전략적 퇴각을 감행했다.
그때 깨달았다. 여행 브로셔 속 웃음 가득한 가족 사진은 그저 광고였다는 것을. 진짜 나는 수영장이 춥고, 물이 무섭고, 그냥 싫었다.
햇볕 → 시계 확인 → "언제 나가지?" → 핸드폰 스크롤.
이 무한 루프가 내 수영장 체험의 전부였다. 아이는 물속에서 신나게 놀고 있는데, 나는 선베드에서 시간의 경과만 체크하고 있었다. 이게 가족 여행의 현실이었다.
원더박스는 컨테이너를 붙여 만든 실내 파크였다. 들어서자마자 곳곳에 보이는 '키 130cm' 표시가 마치 출입국 관리소의 도장처럼 우리 여행에 제동을 걸었다. 아이는 코앞에서 몇몇 기구를 스킵해야 했고, 나는 그 아쉬워하는 뒷모습을 바라보며 괜한 미안함을 느꼈다.
모험심보다 안전함이 우선인 곳에서는 자연스럽게 짜릿함 < 지루함이라는 공식이 완성된다. 딱 한 번 탑승한 '가장 무섭다'는 기구도 결국 "순한 맛 바이킹" 정도였다. 놀이기구 DNA가 전혀 없는 나조차 멀미 없이 무사히 하차할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 그 순간 생각했다. 이 아이가 진짜 스릴을 느끼려면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는 걸까? 그리고 그때쯤 되면 나는 과연 함께 탈 용기가 있을까?
솔직히 말하자면, 당최 재미가 없었다. 한 번 가보고 족한 그런 느낌이었다. SNS에 올릴 만한 사진 몇 장도 없다. 재미가 없어 남겨두고 싶은게 없었을지도 모른다. 집에 돌아와서 아이가 기억에 좋았었던지.. 수영장 또 가자고 할때 문득 깨달았다. 아이에게는 소중한 추억이 만들어지고 있었다는 것을.
가족 여행이란 어쩌면 이런 것일지도 모른다. 어른에게는 인내의 시간이지만, 아이에게는 마법 같은 순간들. 내가 느낀 지루함과 아이가 느낀 즐거움이 동시에 존재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 모든 게 다 진짜라는 것.
[브로셔 밖의 진실]
여행 브로셔는 절대 말해주지 않는다. 부모가 선베드에서 핸드폰만 들여다보는 시간이 실제 물놀이 시간보다 길다는 것을. 아이보다 어른이 먼저 "언제 나가지?"를 속으로 중얼거린다는 것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또 계획을 세운다. 다음 여행지를 검색하고, 아이가 좋아할 만한 곳을 찾아본다. 왜냐하면 그 지루했던 시간들 사이사이에, 아이의 환한 웃음이 끼어있기 때문이다.
결국 가족 여행의 진짜 의미는 브로셔 속 완벽한 순간이 아니라, 불완전하지만 진실한 우리의 모습에 있는 것 같다. 물이 무서워서 발목만 적시는 엄마와, 그런 엄마 곁에서도 신나게 놀 수 있는 아이. 그 모든 서투름과 어색함이 우리만의 여행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3. 플스룸, 포켓볼, 그리고 전동차
플레이스테이션룸은 작은 전쟁터였다. 초등 고학년 아이들이 화면 앞에서 치열하게 게임을 하고 있었고, 그들의 집중된 에너지가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반면 포켓볼장과 볼링장은 한산했다. 사람들은 자극적인 곳에 몰리고, 조용한 곳은 비워두는 법이다.
난 내 본능대로 한적하고 쾌적한 곳을 찾아 볼링장으로 향했다. 유아용 레인이 있다는 안내를 받았다. 게임당 5천 원, 성인용보다 짧은 레인이지만 볼링공은 생각보다 묵직했다. 아이 손에는 여전히 무겁고, 어른 손에도 가벼워 보이지 않는 적당한 무게였다.

이번 여행에서 아이가 꼽은 베스트는 플라자 1층의 '디트로네' 전동차였다. 다섯 살 이후로 유모차를 탄 적 없던 아이가 "다시 애기가 된 기분"이라며 웃었다. 운전은 어른이 담당하고 웃음은 아이가 담당하는, 공평한 분업이었다. 전동차는 천천히 플라자를 돌았고, 우리는 그 속도에 맞춰 주변을 둘러보았다.
작은 전시장도 있었다. 체크아웃 후 1시간까지만 입장 가능하다는 조건이 있었지만, 솔직히 플라자 곳곳에 널린 작품들이 더 인상적이었다. 아침밥을 찾아 호텔 밖으로 나가다가 발견한 거대한 체스판, 복도와 로비 곳곳에 자연스럽게 배치된 조각품들. 별도의 전시공간보다 일상 속에 스며든 예술이 더 기억에 남았다. 계획에 없던 발견들이 여행의 진짜 선물이었다. 아침밥을 찾다 보니 예술작품을 구경하게 되고, 한적한 곳을 찾다 보니 아이와 조용한 시간을 갖게 되었다. 여행은 때로 이런 식으로 흘러간다.
4. 가장 좋았던 장소
모든 일정이 끝나갈 즈음, 호텔과 플라자 사이의 통로가 뇌리에 박혔다. 파도처럼 변하는 LED 조명, 잔잔한 BGM, 마치 다음 장면으로 넘어가는 영화 세트 같았다. 여행이란, 결국 "한 줄기 빛과 음악이 흐르는 통로를 찾아가는 일"인지도 모른다.
남는 건 호박 한 장, 볼링장 사진 한 장, 그리고 조명 터널의 잔상이다. 아이는 웃었지만 나는 시차 적응하듯 가격 적응을 해야 했다. 수영장은 지루했다.
수영을 사랑하거나, 조식 6만 5천 원을 기꺼이 낼 사람이라면 추천한다. 그게 아니라면? 호텔과 플라자 사이의 통로 정도만 보고 플라자 내 푸드코트에서 대충 식사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이래나 저래나 다녀와봤으니, 되었다. 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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