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복잡한 여행보다 단순한 하루가 좋다. 멀리 가거나, 거창한 계획을 세우거나, 특별한 무언가를 해내지 않아도 괜찮다. 그저 조용하고, 바람이 좋고, 가끔 고기 한점 구워 먹을 수 있는 장소면 충분하다.
그리고 사실, 나는 잠자리가 바뀌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캠핑이라고 하기엔 간단하고, 한나절 고기나 구워 먹다 오는 정도의 여정이 더 마음에 든다. 주변 소음에 방해받지 않는 충분한 시간들이 필요했다.

이번에 간 곳은 사실 캠핑장 모습을 한 조용한 음식점이다. 프라이빗한 데크 위에 방갈로들이 있고, 그안에서 식사가 가능했다. 장비는 모두 준비되어 있고, 사장님이 불도 미리 피워주시니 우리는 가볍게 몸만 가면 되었다. 도착해서 자리를 잡고 나면, 아이와 나는 각자의 속도로 움직인다. 매점에서 먹을 것을 찾고, 고르고, 계산한다. 큼직한 웨버 그릴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숯과 그릴이 셋팅되면, 난 거기에 훈연할 고기를 올리고 뚜껑을 닫는다. 고기가 훈연되기 까지 시간이 걸리니, 아이는 주변을 돌아다니며 나뭇잎을 줍거나 조약돌을 모아 무언가를 만든다. 그러다 어느 순간, 훈연이 충분히 되어 뚜껑을 들자 지가 고기를 구워보겠다고 나선다.

훈연이 어느 정도 된 고기를 잘라두고 집개를 넘겨줘 본다. 아이의 서툰 손놀림이 귀엽다. 입에 넣기도 전에 마음 한구석이 따뜻해졌다. 오늘 여기 오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기를 다 먹고 나니 빈 불판이 아까웠다. 먹고 남은 불판에 야채를 구워본다. 이 불판은 누군가의 눈치를 보지 않고, 구워먹고 싶은 걸 마음껏 올려 먹어도 된다. 풋고추가 구워지면서 나는 특유의 풍미가 공간을 채운다.

밥을 먹고 나면, 우리는 그늘진 곳에 앉아 바람을 쐰다. 애시당초 우리 둘은 서로 말이 많지가 않다.
나는 책 한 권을 펼치고, 아이는 집에서 가져온 이면지로 종이접기를 하거나, 자기가 그리고 싶은 그림을 그리고 논다. 가끔은 그냥 멍하니 앉아 하늘을 본다. 도심의 소음도, 휴대폰 알람도, 해야 할 일들도 모두 저 멀리 밀려난다. 아이도 학원숙제와 학교숙제 보다 이런 조용한 시간이 좋은가 보다. 여길 갈꺼라고 하니, 출발 전까지 숙제를 어떻게든 끝내더란다.
반쯤 누워 햇볕을 받으며 "여기 또 오자" 고 말할 때, 그 목소리엔 평소보다 느린 여유가 묻어 있었다. 나는 고개만 끄덕였지만, 속으로는 당연하다고, 또 오자고 답했다. 그날은 그렇게 특별한 일 없이 지나갔다. 하지만 돌아오는 길에 기분이 한결 가벼워져 있는 걸 느꼈다. 아무것도 특별히 하지 않았는데, 뭔가를 충분히 누렸다는 기분. 마치 일상의 무게를 잠깐 내려놓고 온 것 같은 홀가분함이었다. 텐트를 치고 장비를 준비하는 캠핑의 복잡한 과정은 당연히 부담스럽다. 하지만 그 분위기와 시간만은 좋아한다.
앞으로도 그렇게, 아이와 단둘이 조용한 바비큐장을 찾아 가끔은 일상에서 멀어지고, 가끔은 그저 가만히 머물다 올 생각이다. 그런 하루들이 쌓여서, 우리만의 작은 추억이 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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