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몇일 전, 긴 연휴가 시작되자 어딘가로 떠나고 싶은 마음이 불현듯 일었다.
집 안에 갇혀 숨이 차오른 듯, 이유 없이 바깥공기가 간절했다. 창밖으로는 봄이 찾아왔지만, 내 마음속에는 여전히 겨울이 머물고 있었다. 어디론가 떠나야만 이 막연한 무기력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았다.
서둘러 찾은 여행지는 궁평항. 집에서 멀지 않고, 바다도 있으며, 무엇보다 낙조가 아름답다는 말에 끌렸다. 생각해보니 해가 지는 풍경을 마지막으로 본 게 언제였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비스듬히 비치는 쪽빛은 틀림없이 아름다운데, 바쁘다는 핑계로, 혹은 의미 없다고 여겨서, 해가 지는 시간이면 늘 실내에만 있었던 것 같다. 이 여행은 어쩌면 일상의 틈에서 놓치고 있던 한 장면을 되찾는 시도였는지도 모른다.

차를 몰고 도착한 궁평항은 예상보다 조용했다. 바닷바람이 거세게 불었고, 사람들은 어항 주변에 듬성듬성 자리했다. 가게들은 제자리를 지키고 있었고, 식당에서는 하얀 연기가 피어올랐다. 나는 항구 주변을 거닐다 멍하니 하늘을 보았다. 그런데 그 순간부터 마음이 점점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사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해를 기다릴 여유도, 사진을 찍을 열정도, 맛집을 찾아다닐 호기심도 없었다. 바다는 그저 멀리서 출렁였고, 나는 멍하니 시간을 보냈다. 뭔가를 해야 한다는 의욕 없이, 그저 앉아만 있었다. 이 조용함은 기대했던 감성적인 고요함이 아니라, 내 안의 공허함을 크게 증폭시키는 침묵처럼 느껴졌다.

해가 지려면 아직 두세 시간은 더 기다려야 했다. 갑자기 바람이 더 차갑게 느껴졌고, 어딘가 추웠다.. 카페에 들어갈까 생각했지만 뭔가를 마시고 싶은 마음도 들지 않았다. 결국 나는 해가 지기도 전에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그렇게 낙조는 보지 못한 채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 라디오에서는 여행을 떠난 사람들의 사연이 흘러나왔다. "혼자 떠난 속초 여행에서 마음을 비웠다", "봄바다를 보며 위로를 받았다"는 이야기들을 들으며 문득 의문이 들었다.
"나는 왜 아무 위로도 받지 못했을까?"
사람들은 여행에서 감동을 얻고, 위로받고, 어떤 전환점을 찾았다는데, 나는 바다 앞에서 그저 추웠고, 지루했으며, 심지어 빨리 돌아가고 싶었다. 그렇게 성급히 돌아와버렸고, 그날의 여행을 '실패했다'고 여겼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고 나서 그날을 다시 떠올려보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여행이란 정말 '성공'과 '실패'로 나눌 수 있는 걸까?
낙조를 보지 못했다고,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다고 해서, 그게 정말 실패한 것일까. 오히려 그날의 공허함과 허탈함이 내 상태를 너무도 정직하게 보여주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지금 나는 쉬고 싶다는 마음보다, 무엇을 해도 별 감흥이 없는 '무채색의 시기'를 통과하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그것을 아주 명확히 마주하게 해준 곳이 바로 궁평항이었다.
이제는 그날의 여행을 실패라고 말하지 않으려 한다. 낙조를 못 본 것은 아쉽지만, 바닷바람을 맞으며 앉아있던 그 시간 동안 나는 어떤 내면의 목소리를 들은 것 같다. "지금 너는 잠시 멈춰도 괜찮아", "어디를 가도 재미없을 땐, 그냥 그럴 수도 있어"라는 위로.
그것은 나를 탓하지 않는 여행자의 시선이다. 목적지를 정하지 않아도 괜찮고, 특별한 감동이 없어도 괜찮다. 중요한 건 어딘가로 향했다는 것,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내가 어떤 생각을 했는가이다.
다음에는 꼭 해가 지는 모습을 바라보고 오고 싶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그날. - 내가 어떤 상태로 그 풍경을 바라보는가 - 일 것이다. 언젠가 다시 궁평항을 찾게 된다면, 그때는 조금 다른 마음으로 그곳에 앉아 있을 수 있을까. 추위보다 마음이 먼저 따뜻해지는 날을 기약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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