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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실험실/시뮬레이터

리더 없는 방향: Vicsek 모델이 보여주는 “정렬의 탄생”

by 공튼이 2025. 12. 13.

0. 누가 “방향”을 결정하는가

새떼를 보고 있으면 이상한 확신이 든다. 바람도 없는데, 무리는 한쪽으로 흐른다. 어떤 날은 떼가 “춤”이 아니라 “흐름”처럼 보인다.
각자는 작은 점일 뿐인데, 전체는 거대한 한 줄기처럼 이동한다. 누가 “방향”을 만들었을까? 누가 속도를 맞추고, 방향을 고르고, 타이밍을 재단했을까? 이전 Boids 알고리즘을 다루었던 글에서 우리가 봤던 그 질문—“도대체 누가 지휘하는가?”—은 여기서 더 차갑게 다시 나온다.

 

 

새떼의 지혜: Boids 알고리즘이 말하는 진정한 팀워크

1. 하늘의 마법 같은 광경석양이 물든 하늘에서 수백 마리의 찌르레기가 춤을 춘다. 그들은 마치 거대한 검은 비단이 바람에 흩날리듯 움직인다. 한 순간은 넓게 퍼져있다가, 다음 순간엔 촘촘히

prozac0401.tistory.com


Boids는 이 장면을 “세 가지 규칙(분리/정렬/응집)”으로 설명했다. 그런데 물리학자들은 더 과감하게 묻는다.

“응집도, 분리도 다 빼고… 정렬 하나만 남겨도 방향이 생길까?”

 

그 질문에 대한 가장 유명한 대답이 Vicsek 모델이다.

 

1. 질서 속의 무질서, 무질서 속의 질서

Vicsek 모델이 재미있는 이유는, ‘정렬’이란 게 사실 굉장히 허술한 합의라는 점이다. 조직 처럼 회의가 있는것도 아니고, 리더도 없고, 목표도 없다. 단지, “내 주변 몇 명이 어디를 보고 있나” 뿐이다. 그런데도 특정 조건이 되면, 무리는 갑자기 하나의 방향을 갖는다. 그리고 조건이 조금만 바뀌면, 그 방향은 또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사라진다.

 

2. 규칙은 딱 두 줄

Vicsek(1995)은 “자기 추진(self-driven) 입자”들의 최소 모델을 제안한다. 핵심은 이거다.

  1. 모든 개체는 항상 같은 속도 크기로 이동한다.
  2. 매 스텝마다, 반경 R 안 이웃들의 평균 방향을 따라가되, 노이즈(η) 만큼 흔들린다.

즉, “힘”이 아니라 “방향”만 합의한다. 그리고 그 합의는 언제나 잡음(η) 을 품고 있다.

 

3. 이 글에서 볼 지표 1개: 정렬도(Polarization)

Boids 글이 ‘세 규칙’의 조합을 직관으로 보여줬다면, Vicsek은 결과를 숫자 하나로 더 노골적으로 보여준다.

정렬도(Polarization) = 모든 속도 벡터를 합친 뒤 크기를 재고, 개체 수로 나눈 값 (0~1)
- 0 근처: 각자 제멋대로(무질서)
- 1 근처: 거의 같은 방향(질서)

 

둘 다 “주변만 보고” 움직이는데, 설계 철학이 다르다.

  • Boids: 분리/정렬/응집(세 힘)을 섞어 “새처럼 보이게” 만든다. 컴퓨터 그래픽/게임 쪽 문법에 가깝다.
  • Vicsek: 최소 규칙으로 “질서가 언제 생기나”를 본다. 그래서 상전이/보편성 같은 물리 질문에 잘 붙는다.

이 값이 노이즈(η), 밀도(개체 수), 이웃 반경(R) 에 따라 어느 순간 ‘툭’ 하고 넘어간다.

 

Novel type of phase transition in a system of self-driven particles

A simple model with a novel type of dynamics is introduced in order to investigate the emergence of self-ordered motion in systems of particles with biologically motivated interaction. In our model particles are driven with a constant absolute velocity and

arxiv.org

 

 

4. Vicsek 시뮬레이터

※ 아래 시뮬레이터에서 노이즈(η) 를 천천히 올렸다 내리거나, 이웃 반경(R)개체 수를 바꿔보자.
어느 구간에서는 “갑자기” 정렬도가 살아나고, 어느 구간에서는 아무리 기다려도 흩어진다. (리더 없이도.)

1) 노이즈(η)만 올려보기: ‘질서의 온도’

  • η를 천천히 올려보자.
  • 어느 지점부터 정렬도는 급격히 내려가고, 궤적은 짧고 흐트러진다.

해석:
이 모델에서 η는 “개체의 마음이 산만해지는 정도”이자 “환경의 흔들림”이다.
질서가 유지되려면, 흔들림보다 합의가 더 강해야 한다.

2) 반경(R)을 키워보기: ‘소문이 퍼지는 거리’

  • η가 조금 높아도, R을 키우면 다시 정렬이 살아난다.
  • 반대로 R이 너무 작으면, 작은 동네들만 각자 따로 합의한다.

보이는 장면:
“전체가 한 방향”이 아니라 “여러 덩어리의 방향”이 공존한다.

3) 개체 수를 올려보기: ‘밀도’가 만드는 합의

같은 η에서도 개체 수(밀도)를 올리면 정렬이 쉬워진다.
이웃이 많아질수록 평균 방향이 안정되기 때문.

 

관찰 포인트:
☞ 잔상이 “실”처럼 한 방향으로 길게 뽑히는 순간이 오면, 이미 질서가 생긴 것이다.

 

 

5. Vicsek vs Boids: 둘은 ‘같은 질문’을 다른 방식으로 풀어준다

이전에 소개했던 Boids 알고리즘은 “세 가지 규칙”으로 새떼다운 움직임을 만든다. (Separation / Alignment / Cohesion)

Vicsek은 반대로 정렬 하나만 남겨서, “질서가 언제 생기고 언제 사라지는가”를 더 선명하게 본다.

  • Boids: 표현(behaviour) 중심 — “새처럼 보이는가?”
  • Vicsek: 현상(phase) 중심 — “언제 갑자기 ‘한 방향’이 되는가?”

Vicsek은 반대로 정렬 하나만 남겨서, “질서가 언제 생기고 언제 사라지는가”를 더 선명하게 본다.

즉, Boids 글의 결론이 “작은 규칙이 협업을 만든다”였다면, Vicsek의 결론은 조금 더 비정하다.

 

 

6. 마무리: 방향은 “결정”이 아니라 “발생”이다

좋은 리더가 있어서가 아니라, 노이즈가 낮고 서로를 볼 수 있어서 방향이 ‘그냥’ 생긴다. 그리고 이 말은 동시에 경고이기도 하다. 조금만 더 시끄러워지거나(η↑), 서로를 덜 보게 되면(R↓, 밀도↓), 방향은 쉽게 무너진다.

누가 합의하자고 말하지 않아도 노이즈가 낮고, 서로를 볼 수만 있으면 방향은 그냥 생긴다.
그리고 그 조건이 살짝만 바뀌면, 방향도 그냥 사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