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누가 “방향”을 결정하는가
새떼를 보고 있으면 이상한 확신이 든다. 바람도 없는데, 무리는 한쪽으로 흐른다. 어떤 날은 떼가 “춤”이 아니라 “흐름”처럼 보인다.
각자는 작은 점일 뿐인데, 전체는 거대한 한 줄기처럼 이동한다. 누가 “방향”을 만들었을까? 누가 속도를 맞추고, 방향을 고르고, 타이밍을 재단했을까? 이전 Boids 알고리즘을 다루었던 글에서 우리가 봤던 그 질문—“도대체 누가 지휘하는가?”—은 여기서 더 차갑게 다시 나온다.
새떼의 지혜: Boids 알고리즘이 말하는 진정한 팀워크
1. 하늘의 마법 같은 광경석양이 물든 하늘에서 수백 마리의 찌르레기가 춤을 춘다. 그들은 마치 거대한 검은 비단이 바람에 흩날리듯 움직인다. 한 순간은 넓게 퍼져있다가, 다음 순간엔 촘촘히
prozac0401.tistory.com
Boids는 이 장면을 “세 가지 규칙(분리/정렬/응집)”으로 설명했다. 그런데 물리학자들은 더 과감하게 묻는다.
“응집도, 분리도 다 빼고… 정렬 하나만 남겨도 방향이 생길까?”
그 질문에 대한 가장 유명한 대답이 Vicsek 모델이다.
1. 질서 속의 무질서, 무질서 속의 질서
Vicsek 모델이 재미있는 이유는, ‘정렬’이란 게 사실 굉장히 허술한 합의라는 점이다. 조직 처럼 회의가 있는것도 아니고, 리더도 없고, 목표도 없다. 단지, “내 주변 몇 명이 어디를 보고 있나” 뿐이다. 그런데도 특정 조건이 되면, 무리는 갑자기 하나의 방향을 갖는다. 그리고 조건이 조금만 바뀌면, 그 방향은 또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사라진다.
2. 규칙은 딱 두 줄
Vicsek(1995)은 “자기 추진(self-driven) 입자”들의 최소 모델을 제안한다. 핵심은 이거다.
- 모든 개체는 항상 같은 속도 크기로 이동한다.
- 매 스텝마다, 반경 R 안 이웃들의 평균 방향을 따라가되, 노이즈(η) 만큼 흔들린다.
즉, “힘”이 아니라 “방향”만 합의한다. 그리고 그 합의는 언제나 잡음(η) 을 품고 있다.
3. 이 글에서 볼 지표 1개: 정렬도(Polarization)
Boids 글이 ‘세 규칙’의 조합을 직관으로 보여줬다면, Vicsek은 결과를 숫자 하나로 더 노골적으로 보여준다.
정렬도(Polarization) = 모든 속도 벡터를 합친 뒤 크기를 재고, 개체 수로 나눈 값 (0~1)
- 0 근처: 각자 제멋대로(무질서)
- 1 근처: 거의 같은 방향(질서)
둘 다 “주변만 보고” 움직이는데, 설계 철학이 다르다.
- Boids: 분리/정렬/응집(세 힘)을 섞어 “새처럼 보이게” 만든다. 컴퓨터 그래픽/게임 쪽 문법에 가깝다.
- Vicsek: 최소 규칙으로 “질서가 언제 생기나”를 본다. 그래서 상전이/보편성 같은 물리 질문에 잘 붙는다.
이 값이 노이즈(η), 밀도(개체 수), 이웃 반경(R) 에 따라 어느 순간 ‘툭’ 하고 넘어간다.
Novel type of phase transition in a system of self-driven particles
A simple model with a novel type of dynamics is introduced in order to investigate the emergence of self-ordered motion in systems of particles with biologically motivated interaction. In our model particles are driven with a constant absolute velocity and
arxiv.org
4. Vicsek 시뮬레이터
※ 아래 시뮬레이터에서 노이즈(η) 를 천천히 올렸다 내리거나, 이웃 반경(R) 과 개체 수를 바꿔보자.
어느 구간에서는 “갑자기” 정렬도가 살아나고, 어느 구간에서는 아무리 기다려도 흩어진다. (리더 없이도.)
1) 노이즈(η)만 올려보기: ‘질서의 온도’
- η를 천천히 올려보자.
- 어느 지점부터 정렬도는 급격히 내려가고, 궤적은 짧고 흐트러진다.
해석:
이 모델에서 η는 “개체의 마음이 산만해지는 정도”이자 “환경의 흔들림”이다.
질서가 유지되려면, 흔들림보다 합의가 더 강해야 한다.
2) 반경(R)을 키워보기: ‘소문이 퍼지는 거리’
- η가 조금 높아도, R을 키우면 다시 정렬이 살아난다.
- 반대로 R이 너무 작으면, 작은 동네들만 각자 따로 합의한다.
보이는 장면:
“전체가 한 방향”이 아니라 “여러 덩어리의 방향”이 공존한다.
3) 개체 수를 올려보기: ‘밀도’가 만드는 합의
같은 η에서도 개체 수(밀도)를 올리면 정렬이 쉬워진다.
이웃이 많아질수록 평균 방향이 안정되기 때문.
관찰 포인트:
☞ 잔상이 “실”처럼 한 방향으로 길게 뽑히는 순간이 오면, 이미 질서가 생긴 것이다.
5. Vicsek vs Boids: 둘은 ‘같은 질문’을 다른 방식으로 풀어준다
이전에 소개했던 Boids 알고리즘은 “세 가지 규칙”으로 새떼다운 움직임을 만든다. (Separation / Alignment / Cohesion)
Vicsek은 반대로 정렬 하나만 남겨서, “질서가 언제 생기고 언제 사라지는가”를 더 선명하게 본다.
- Boids: 표현(behaviour) 중심 — “새처럼 보이는가?”
- Vicsek: 현상(phase) 중심 — “언제 갑자기 ‘한 방향’이 되는가?”
Vicsek은 반대로 정렬 하나만 남겨서, “질서가 언제 생기고 언제 사라지는가”를 더 선명하게 본다.
즉, Boids 글의 결론이 “작은 규칙이 협업을 만든다”였다면, Vicsek의 결론은 조금 더 비정하다.
6. 마무리: 방향은 “결정”이 아니라 “발생”이다
좋은 리더가 있어서가 아니라, 노이즈가 낮고 서로를 볼 수 있어서 방향이 ‘그냥’ 생긴다. 그리고 이 말은 동시에 경고이기도 하다. 조금만 더 시끄러워지거나(η↑), 서로를 덜 보게 되면(R↓, 밀도↓), 방향은 쉽게 무너진다.
누가 합의하자고 말하지 않아도 노이즈가 낮고, 서로를 볼 수만 있으면 방향은 그냥 생긴다.
그리고 그 조건이 살짝만 바뀌면, 방향도 그냥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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