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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실험실/시뮬레이터

Schelling 분리 모형: ‘조금의 선호’가 도시를 갈라놓는 이유

by 공튼이 2025. 12. 13.

0. 아주 작은 부탁

처음엔 별일 아니었다. 카페에 가면 나는 습관처럼 구석 자리를 찾는다. 시끄러운 중심보다, 조용한 벽 쪽이 “편해서”였다. 회사에서도 비슷했다. 점심은 늘 익숙한 사람들과 먹거나, Project 를 함께하는 팀원들과 먹거나, 혼자 먹거나이다. 딱히 새로운 사람을 싫어한 건 아니지만, 낯선 테이블에 앉는 건 괜히 에너지가 들었다.

 

온라인에서는 더 단순했다. 내가 시청한 기록들이 쌓이자, 피드는 “나 같은 사람들”로 채워졌다. 불쾌한 말을 보고 싶어서가 아니라, 그저 편한 것(!)만 보게 된 결과였다. 이 글은 바로 그 지점에서 시작한다.

 

‘혐오’가 아니라 ‘편안함’이 출발점일 때도, 세상은 어느 순간 선명하게 갈라질 수 있다.

 

1. Schelling 분리 모형이란?

Schelling 분리 모형은 본래 “주거 분리”를 설명하기 위해 만든 아주 간단한 규칙 모델이다. 2차원 격자 공간을 배경으로 한 어떤 도시가 있고, 각 칸은 세 가지 중 하나로 정의된다.

  • A 집단
  • B 집단
  • 빈집(공실)

그리고 A 집단과 B 집단 사람들은 매 순간 이렇게만 판단한다 가정해보자.

“내 주변 이웃 중에서 나와 같은 집단 비율이 내 기준(관용도, tolerance) 이상이면 만족. 아니면 어디론가 이사.”

 

누가 “갈라져 살자”고 외치지 않아도, 이 규칙을 반복하면 도시가 블록처럼 굳어지는 장면이 나타난다.

 

2. ‘혐오’가 없어도 분리가 생기는 이유

사람들은 종종 이렇게 말한다.

나는 딱히 배타적인 사람은 아니라 생각해.
다만… 주변에 나랑 비슷한 사람이 '조금' 은 있으면 좋겠어.

 

위 말에서 핵심은 이 '조금' 이라는 표현이다. '혐오' 와 같은 과격한 워딩도 아니고 개인의 선호는 틀림없이 온건해 보이는데, 이사(이동)라는 의사 결정이 반복되다 보면 예상보다 드라마틱한 결과가 나타난다.

  1. 불만족인 사람빈집으로 이동한다.
  2. 그 이동이 주변 구성을 바꾼다.
  3. 그로인한 변화가 또다른 누군가를 불만족하게 만든다. -_-..
  4. 다시 이동이 발생한다. 

악의가 아닌 편안함을 향한 작은 이동이 누적되면서 도시 전체는 더 선명한 경계를 갖기 시작한다.

이건 “혐오”와는 다른 이야기다. 오히려 “싫어해서”라기 보단 “편해서” 생기는 균열이다.

 

3. 관용도(tolerance)는 무엇을 뜻하나?

관용도는 이렇게 이해하면 된다.

“내 주변 이웃 중 같은 집단이 최소 몇 % 이상이면 괜찮다.”

 

예를 들어 관용도가 35%라면 이웃 8명 중 3명만 같은 집단이어도(3/8=37.5%) 만족한다.

 

관용도가 올라갈수록 벌어지는 일은 단순하다.

만족하기 어려워짐(불만족) → 이동 증가 → 블록이 굳어짐

 

 

4. Schelling 시뮬레이터

아래 시뮬레이터는 만족도(기준을 만족하는 거주자 비율)와 분리도(각 거주자 주변의 ‘같은 집단 비율’ 평균)를 계속 보여준다. 분리도는 0.5 근처면 섞임이 많고, 1에 가까울수록 강한 분리를 뜻한다. 특히 관용도를 조금만 올렸을 뿐인데 어느 순간 덩어리가 ‘확’ 굳는 순간(tipping)이 나타나는 장면이 핵심이다. 범례는 화면 상단에 있으며, 화면을 가리는 상태창은 토글로 끌 수 있다.

 

A B 빈집
Schelling 분리 모형 ‘조금의 선호’가 ‘큰 분리’를 만드는 과정
0. 도시 설정
12%
A 50% / B 50%
1. 선호(관용도)와 이웃
35%
2. 이동 규칙
25
120
3. 속도 / 표시
100ms
만족도: 0% | 분리도: 0.00 | 불만족: 0 | 스텝: 0

 

“누가 누구를 미워해서”가 아니라 “단지, 편한 자리로 옮겼을 뿐”인데 그 편안함이 누적되는 모습을 꽤 오래 지켜볼 수 있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서로의 경계가 명확하게 구분되어져 감을 알 수 있다.

 

5. ‘혐오인 듯 아닌 듯’한 현상과의 연결

이 모델이 흥미로운 건, 주거 문제에만 그치지 않아서다.

  • 학교/학원/동호회: “싫어서”가 아니라 “편해서” 비슷한 사람들이 모인다
  • 회사 팀/프로젝트: 익숙한 조합이 반복되면 새로운 연결이 생기기 어렵다
  • 온라인 커뮤니티/피드: 추천은 친절하지만, 결과적으로 “비슷한 것만 보게” 만든다

이 경계는 종종 혐오처럼 보이지만, 피로를 줄이려는 선택일 때가 많다.

그래서 이 모델은 질문을 바꾼다.

“사람들의 마음을 고치자”가 아니라
“편안함이 쌓여도 갈라지지 않도록 환경을 어떻게 설계할까?”

 

6. 결론: 악의가 없어도, 경계는 생길 수 있다

Schelling 모델이 보여주는 건 잔인할 정도로 단순한 문장이다.

  • 사람들은 극단적 분리를 원하지 않을 수 있다.
  • 하지만 작은 선호(관용도)가 있고, 이동(이사)이 반복되면, 경계는 어느 순간 또렷해질 수 있다.

그래서 어떤 사회 현상을 볼 때, 이렇게도 말해볼 수 있다. 

“저게 과연 혐오일가?”라는 질문과 함께, “저 경계를 만드는 반복되는 선택은 무엇인가?”를 같이 보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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