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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실험실/시뮬레이터

불안한 대칭

by 공튼이 2025. 7. 17.

눈꽃 속 가장 작은 선에서 어떻게 이런 완벽한 대칭이 나오는걸까?? 완벽함이란 원래 불안한 것이다. 너무 질서정연해서 오히려 섬뜩하기도 하다. 자연이 이토록 수학적일 리 없는데, 정작 현실은 공식보다 더 공식적이다. 작은 규칙 한 줄 ― 그것은 우주가 채택한 가장 경제적인 마술이다. 무심코 반복되며, 끝내는 우리 시야를 밀어내고 공간을 가득 채운다. 그 놀라움은 과학적 호기심만으로는 수습되지 않는다. 어느 겨울밤, 눈꽃의 육각별이 나를 붙들어 세웠듯이 말이다.

1. 바람에 닳아 생긴 목적론

눈부신 설원의 선은 쉬지 않고 되풀이된 각도의 합이다. 눈송이의 ‘냉철·질서’를 빚어내는 Koch 눈꽃(60°), 정사각형 방마다 꺾이며 이어지는 Hilbert 곡선(90°), 그리고 억센 줄기에서 잎맥이 부풀 듯 자라나는 Classic Plant(25°) — 첫 문자열은 단순하지만, 단계마다 얹히는 세대가 기하급수로 아름다움을 증폭한다.
 
하지만 같은 "반복"이라도, 어떤 각도를 택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세계가 열린다. 마치 비슷한 재료로 전혀 다른 맛의 독(!)을 우려내듯, 패턴은 우리 마음 어딘가를 건드린다. “내가 오늘 두고보려는 것은 어떤 감정인가?”를 자문하는 순간, 규칙은 그저 코드가 아니라 메타포가 된다.
 

2. 고작 5°의 차이가 만드는 균열

잠시 스크롤을 멈추고. Grow 버튼을 대여섯번 클릭한 다음. 회전각을 살짝만 돌려보자. 고작 약간의 차이가 수천 개의 선분 밀도를 바꾼다. 잎맥이 엇갈리고, 빈 공간이 촘촘해진다.
 

 
"아주 조금만 각도를 틀어도 세상이 이렇게 달라지는구나."
이는 우리에게 묻는다. 삶의 각도를 아주 조금만 비틀면, 내가 놓치고 있던 길은 어디까지 열릴까?
그런데 무서운 건, 이 미세한 차이가 되돌릴 수 없다는 점이다. 한 번 비틀린 각도는 세대를 거듭하며 기하급수적으로 증폭된다. 나비효과라기보다는, 차라리 운명의 톱니바퀴에 가깝다.
 

3. 나에게 맞는 절망(!)을 고르는 법

프랙탈을 고르는 것은 결국 어떤 방식으로 무한을 받아들일지 선택하는 일이다. 수많은 선들을 재귀적으로 렌더링 해야 하니, 기계 입장에서는 좀더 절망에 가깝다고 할수 있다. 부디 패턴의 첫 인상에 속지 않기를 바란다.

눈꽃의 예리함이 아름답다고? 그 완벽함 뒤에 숨은 차가움을 견딜 수 있을까?
Dragon Curve 의 모험이 매혹적이라고? 그 길 끝에 출구가 있을 거라 확신하는가?
식물의 성장이 희망적이라고? 가지 하나하나가 또 다른 짐이 될 수도 있는데도?

 
각도·스케일·깊이를 조정하는 건 조향사가 향수를 만드는 것과 같다. 처음엔 모든 게 비슷해 보이지만, 점점 미세한 차이가 느껴진다. 중요한 건 외우는 게 아니라 느끼는 것이다. 화면 속 피드백이 몸에 먼저 와닿을 때, 그제야 숫자가 의미를 갖는다.
 
힐베르트 곡선이 당신에겐 '좁은 원룸의 동선'처럼 보였을 수도 있다. 그 느낌과 직관은 결코 이상한 것이 아니다. 패턴은 스스로를 설명하지 않는다. 꿈보다 해몽이라고, 설명은 늘 관찰자의 몫이었다. 아무리 수학적으로 골져스하다 한들, 그걸 느끼는 건 결국 상처받은 인간의 마음이다.
 

4. 응용: 삶의 배경으로 써먹는 법

나만의 각도로 완성한 프랙탈을 SVG로 저장해보자. 정말 심심하면 본인의 아이덴터티를 만들어 본다(?)고 생각하고 이것저것 움직여봐도 좋다. 투명 배경 눈꽃 하나가 명함을 꽤나 세련되게 채워준다. 힐베르트 곡선 위에 히트맵을 펼치면, 1차원 배열도 층층이 정리된다. 숫자들이 거주할 집을 얻는 셈이다. 잎사귀 패턴을 레이저 커팅하면 근사한 책갈피가 된다. 작은 규칙이 손끝에서 물성을 얻는 순간, 디지털은 비로소 현실을 건드린다.
 

5. "당신의 각도는 몇 도인가"

돌이켜보면, 우리 하루도 미세한 반복의 연속이다. 알람을 끄고, 커피 물을 올리고, 지하철 노선 같은 문자열을 머릿속에서 재작성한다. 어쩌면 인생이란 거대한 프랙털 System 이며, 우리는 매 세대마다 규칙을 조금씩 수정할 기회를 얻는다. 다만 그 수정이 더 나은 방향일 거라는 보장은 없다.
 

오늘 이 글이 당신에게 작은 각도 하나를 선물하였기를 바란다. 이 각도가 눈송이처럼 금새 녹아 없어져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