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늘 질서가 세상을 지배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들판을 지켜본 자는 안다. 그 질서는 위태로운 균형 위에 세워진 가면극일 뿐이라는 것을. 숲 속 한켠. 무수한 풀잎들이 햇살을 받으며 피어난다. 그 위로 굶주린 초식동물이 나타난다. 그리고… 멀지 않은 곳에서 금빛 눈을 반짝이며 포식자가 기다린다.
이 시뮬레이터는 그런 세계를 담고 있다. 식물은 자라고, 피식자는 움직이며, 포식자는 사냥한다. 그들의 행동 하나하나가 서로의 미래를 바꾸며, 숫자로 환산되지 않는 생존의 서사를 그려낸다.
1. 모든 건 우연이고, 우연이 아니다
당신은마치 신의 손처럼, 숫자 몇 개만으로 삶과 죽음의 비율, 도망칠 수 있는 속도, 죽지 않기 위해 필요한 에너지를 정할 수 있다.
시드값 42. 우주의 의미를 담은 숫자라더니, 여기서는 그저 대량학살의 시작점일 뿐이다. 그러나 당신이 아무리 계산적으로 설정했다 한들 이 세계는 예측할 수 없는 진화를 시작한다. 포식자가 너무 많아지면 금세 굶어 죽고, 초식동물이 너무 번성하면 풀 한 포기 남지 않는다. 밸런스? 착각이다. 이곳엔 오직 '변화'만이 존재한다.
처음엔 모두가 희망에 차 있다. 풀은 무성하고, 토끼는 뛰놀고, 늑대는 배부르다. 그러나 300틱만 지나면? 캔버스는 묘지가 된다.
2. 너는 언제 번식하고, 언제 사라지는가
모든 개체는 단순한 로직을 따라 산다.
- 식물은 자라난다. 누구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지만 누구에게나 먹힌다. 평화주의자의 숙명이다.
- 초식동물은 식물을 찾아 헤매고, 번식과 생존 사이에서 끊임없이 에너지를 계산한다. 마치 월급날을 기다리는 직장인처럼.
- 육식동물은 그 모든 흐름을 교란시킨다. 단 한 마리의 존재로도 생태계를 무너뜨릴 수 있다. 벤처캐피털이 스타트업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과 닮았다.
움직이면 에너지를 잃는다. 에너지가 충분하면 번식한다. 에너지가 바닥나면 죽는다. 이 짧은 문장은 생의 전부다. 살고 싶다 → 움직인다 → 에너지를 잃는다 → 다시 살고 싶다. 끝없는 루프 속에서 그들은 살기 위해 살아간다. 번식의 조건은 잔혹하다. 에너지가 80% 이상 남아야 한다. 즉, 배부른 자만이 미래를 꿈꿀 수 있다. 나머지는? 그저 오늘을 연명할 뿐이다.
3. 숫자가 되기 전, 개체는 살아 있었다
캔버스 위에 점 하나, 선 하나. 그러나 그 안엔 존재의 무게가 실려 있다.
- 살아 있는 개체 수는 실시간 그래프로 추적된다. 주식 차트처럼 오르내리지만, 여기서 하락은 곧 죽음을 의미한다.
- 개체별 이동 궤적은 잔상의 형태로 남는다. 죽은 자의 길은 서서히 사라지지만, 잠시나마 "나 여기 있었다" 라고 외친다.
- 죽은 개체는 사라지지 않고, "흔적"으로 남는다. 빨간 X표. 무덤도 없는 디지털 황무지의 묘비석.
어쩌면 우리가 만든 건 시뮬레이터가 아니라 장례식장의 블랙박스였을지도 모른다. 매 순간 누군가는 태어나고, 누군가는 죽는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실시간으로 관찰한다. 신은 이런 기분일까? 가장 잔인한 건 일시정지 버튼이다. 우리는 언제든 시간을 멈출 수 있다. 그들의 삶과 죽음을 일시정지시킨 채, 커피 한 잔을 마시러 갈 수 있다. 돌아와서 다시 재생.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말이다.
4. 이것은 끝이 아니라, 시작일 뿐
이 세계는 작다. 요즘 나오는 스마트폰 화면보다 작은 우주다. 그러나 그 안에서 태어나고, 움직이고, 죽는 것들은 실로 다양하다.
당신이 숫자를 바꾸고, 룰을 조금만 조정하면 이 세계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시작한다.
- 육식동물 20마리? 대량학살의 시대가 열린다.
- 식물 500그루? 황금시대. 모두가 배부르다. 잠시나마.
- 속도 0.1배속? 슬로우모션 아포칼립스. 죽음도 느리게 온다.
그리고… 그 이야기의 결말은, 한 번도 같은 적이 없다. 결국 이것은 삶의 부조리함을 픽셀로 구현한 철학적 실험이다. 우리는 신이 되어 생명을 창조했건만, 그들을 구원할 수는 없었다.
F5를 누르면 모든 것이 리셋된다. 새로운 세계, 새로운 희망, 그리고 새로운 절망. 마치 우리의 삶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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