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늘도 살아남았다.
아침 7시 알람부터 밤 11시 침대까지,
완벽하게 짜여진 각본대로 움직였다.
웃어야 할 때 웃었고,
고개 숙여야 할 때 숙였다.
마치 잘 조련된 동물처럼.
그래서일까.
새벽 2시 47분,
나는 다시 깨어났다.
아니, 정확히는 잠들지 못했다.
냉장고가 웅웅거린다. 그 소리가 이상하게 위로가 된다. 기계도 살아있다고, 너도 살아있다고 속삭이는 것 같아서...?
맨발로 베란다로 나가본다. 차가운 바닥이 발바닥을 찌른다. 아프다. 그래서 좋다. 낮 동안 무감각했던 신경들이 비로소 깨어난다.
컵라면을 끓인다.
MSG가 뇌를 침범할 거라는 걸 안다.
나트륨이 혈관을 붓게 할 거라는 것도 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끓는 물소리와
피어오르는 증기와
싸구려 향신료 냄새가
나를 이 세계에 붙들어둔다.
창밖을 본다. 도시는 잠들지 않는다. 저 멀리 편의점 불빛, 가로등 아래 취객, 배달 오토바이의 붉은 테일램프. 모두가 자신만의 새벽을 견디고 있다.
하필 왜 이 시간에 깨어있을까. 낮의 가면이 너무 무거워서? 아니면 진짜 얼굴을 마주할 시간이 필요해서?
폰을 켠다.
SNS를 연다.
모두가 행복한 척하는 타임라인.
완벽한 아침 루틴, 건강한 식단, 성공적인 하루.
나는 조용히 앱을 닫는다.
그리고 배달 앱을 연다.
치킨. 피자.
죄악의 카탈로그.
주문 버튼을 누르는 손가락이 떨린다. 죄책감 때문이 아니다. 기대감 때문이다.
40분 후, 현관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릴 것이다. 그 순간만큼은 내가 이 도시의 주인공이 된다.
새벽의 폭식은 배고픔 때문이 아니다. 그것은 살아있음을 확인하는 원시적 의례다.
씹고, 삼키고, 소화하는 행위로 내가 아직 기능하는 생명체임을 증명하는 의식과도 같은 것이다.
기름진 치킨을 뜯는다.
손가락이 번들거린다.
입 안이 느끼하다.
콜라로 씻어낸다.
어딘가 역겹다.
그리고 살아있다.
TV를 켠다. 새벽 홈쇼핑이 나온다. 행복을 파는 사람들. "이것만 있으면 당신의 삶이 바뀝니다." 따위 거짓말이다.
하지만 새벽의 외로움은 그 거짓말조차 달콤하게 만든다. 우리는 모두 무언가로부터 도망치고 있다.
어떤 이는 술로. 어떤 이는 담배로. 어떤 이는 사랑으로. 나는 새벽의 고독으로.
4시 23분.
동이 트려면 아직 멀었다.
쓰레기를 치운다.
증거를 인멸한다.
아침이 오면,
나는 다시 건강한 시민이 될 것이다.
샐러드를 먹고,
물을 마시고,
계단을 오를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새벽의 죄인으로 남겠다.
침대로 돌아간다. 이불 속으로 파고든다. 몸이 무겁다. 죄악의 무게인지, 만족의 무게인지 모르겠다.
창밖에서 첫 새가 운다. 곧 아침이다. 또 다른 가면을 쓸 시간이다.
하지만 괜찮다. 오늘 밤도 새벽은 올 것이고, 나는 다시 깨어날 것이다. 그때까지만 버티면 된다.
새벽 5시 15분.
나는 오늘도 살아남았다.
아니, 새벽 덕분에 살아남았다.
이 도시의 불면증 환자들에게
새벽을 견디는 모든 젊은 영혼들에게
작은 일탈을 통해 삶을 지속 가능케 하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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