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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로그/관찰일기

낡은 상자와 새 풍경 사이

by 공튼이 2025. 6. 20.

한때 나는 ‘이사’라는 단어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던 사람이다. 작은 조직에 몸담고 있을 땐 사무실이 마치 연중 행사처럼 바뀌었다. 매 반기별로 박스를 다시 접고, 와이어 정리 밴드를 풀고, 흘러나온 커피 자국을 휴지로 훔치며 “다음엔 정말 오래 있을 수 있겠지” 하고 중얼거렸다. 그때 깨달았다—사람도 사물도 자리 한 번 바뀌면 관계가 사선으로 어긋난다는 사실이다. 같은 팀원이라도 새로운 책상 배치 뒤에서는 ‘이웃’이 아닌 ‘원거리’가 되고, 복도 끝 커피 머신까지 가는 동선이 바뀐 덕에 하루에 듣는 농담 수가 줄었다.

 

 

그래서 비교적 안정적인 조직(!)으로 이동이 결정되었을 때, 마음 한 구석이 놓였다. 여긴 그래도 별도의 건물이 있고, 난 이곳에 최소 몇십 년은 이곳에 뿌리내릴 것만 같았고, 덩달아 고정된 좌표를 얻을 줄 알았다. 그러나 ‘영원’은 예상보다 얇은 포장지였다. 이곳에 온 첫 해에만 작은 이동 두 번, 이듬 해엔 건물 자체를 옮겼다. 구글 캘린더보다 이사 일정이 더 자주 울렸다. ‘안정감’을 위해 택한 이동이, 아이러니하게도 이곳 부서 분들에게 까지 다시 ‘움직임’을 선물한 셈이었다.

 

1. 왜 우리는 자꾸 움직일까?

  • 최적화라는 미명
    임대료, 출퇴근 동선, 조직 문화—모두 ‘효율’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지만, 실상은 유동성의 다른 얼굴이다. 모든 것이 구독 모델로 바뀌어 가듯 사무실도 ‘정기 교체’가 당연해졌다.
  • 물리적 거리 = 심리적 거리
    함께 일하던 팀원이 탕비실 반대편 섹터로 간 것뿐인데 대화보다 메신져가 늘었다. 의자 간격 몇 미터가 마음의 간격 몇 킬로가 되기도 한다. 공간 배치는 결국 인간관계를 재편한다.
  • 움직임의 내성
    잦은 이동은 불편함을 늘리지만, 동시에 ‘적응 근육’을 길러 준다. 세 번쯤 박스를 싸다 보면, 어느새 내 책상엔 필수품만 남고 군더더기는 사라진다. 이동이 미니멀리즘의 교관이 되는 셈이다.

2. 낯선 복도 끝에서 배우는 것

  • 기대치 조절
    ‘이번에는 오래 있을 거야’라는 확언 대신 ‘다음 풍경도 나쁘지 않을 거야’라는 유연함을 채택한다.
  • 관계의 재구성
    장소가 달라져도 이어질 인연은 결국 이어진다. 커피가 흘러넘친 머그컵처럼, 말도 발걸음도 길을 찾아 새 협업을 만든다.
  • 나만의 고정점
    이삿날마다 책상 서랍 맨 앞칸에 넣는 작은 식물, 혹은 좋아하는 단축키 설정처럼 물리적 좌표를 넘어서는 나만의 ‘변하지 않는 것’을 만든다.

3. 마무리: 이사라는 움직이는 주석

그 모든것도, 안정성을 보증해 주진 못한다. 대신 이사라는 불시에 달린 주석(註釋)이 내 커리어 노트를 더 입체적으로 만들었다. 정해진 주소 대신 ‘변화에 반응하는 방법’을 주소로 삼게 된 셈이다. 다음에 또다시 짐을 싸게 되더라도, 이번엔 조금 다른 마음으로 상자를 접을 수 있을 것 같다. 새 풍경 속 낯선 복도 끝에서도, 내가 찾는 건 결국 익숙한 동료의 웃음과 내 노트북의 전원 버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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