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커피머신이 분주히 몸을 풀고 온기가 퍼지는 그 순간에서야 나는 겨우 눈을 뜬다. 물이 팔팔 끓어오르고 투명한 증기가 춤을 출 때, 나는 가만히 서서 그 풍경을 지켜볼 뿐이다. 노트북 화면이 환히 밝아지면, 이미 AI가 요약을 끝내고 할 일의 절반을 이미 완성해 두었다. 커피머신은 커피를, AI는 정답을 만들어내고, 나는 오늘도 조금 늦게 온 인간이다.
수개월 사이, 나는 줄거리를 놓쳤다. 손끝으로 코드를 한 줄씩 적고, 직접 에러를 붙잡던 그 시절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다. 이제 AI가 문제를 받고 답을 제시하고, 또 다른 AI가 그 답을 평가한다. 나는 중간에서 결과를 슬쩍 훑어보며 "괜찮네" 혹은 "이건 아니야"라고 고개를 끄덕일 뿐이다. 이 시스템 안에서 진짜 사고력은 누구의 것인가. AI가 짠 코드를 AI가 평가하는 그 순간, 그 성취와 성장은 누구의 몫인가. 나는 사용자인가, 관람자인가, 심판대 위의 주인공은 과연 누구인가.

지난해 우리는 RAG가 세상을 혁신할 거라 믿었다. 비교적 작은 온프레미스 모델과 함께 문서를 탐색하고 AI가 답을 꺼내주는 마법 같은 구조다. 기업의 보안과, 도메인 지식을 반영한 정확한 대답이란 두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을 것 같아 보였다. 하지만 실제로 써보니, 원하는 정보는 사라지고 알 수 없는 Text 만 남았다. 질의에 대한 답변으로 두 달 전 회의록이 그대로 돌아올 때면 "그래도 뭔가 했구나"라는 위안만이 남는다. 내가 만든 결과인지, AI가 만든 결과인지 헷갈리는 감정이 요즘 나의 전부다. AI Agent는 멈추지 않고 판별하고 수정하며, 잘못된 것은 고쳐 쓰고 이유까지 덧붙여 몇 초 만에 끝낸다. 나는 그 광경을 조용히 지켜보다가, 작은 목소리로 묻는다. "정말 이게 맞는 거야?"
아침의 커피 향기와 AI의 번쩍이는 속도 사이에서, 우리는 어느새 자리를 내주고 있다. 기계가 주도하는 흐름 속에서도, 도구를 통제하고 목적을 설계하며 맥락을 판단하는 것은 여전히 우리의 몫이다. AI가 빠르고 정확하게 정답을 내놓을 때에도, 그 '정답'을 선택하고 활용하는 기준은 우리의 가치관과 목표에서 비롯된다.
AI는 과거 데이터를 바탕으로 최적의 해법을 제시하는 강력한 파트너가 되어주겠지만 전혀 예상치 못한 돌파구를 스스로 만들어 내는 건 여전히 우리의 몫이다. 오히려 낯선 질문을 던지고, 실패를 감수하며, 그 실패로부터 새로운 길을 모색할 때 비로소 진짜 사고력은 깨어난다. 물론 AI의 도움으로 아이디어의 씨앗을 얻고, 생각의 지평을 넓힐 수 있다. 그러나 가장 혁신적인 발걸음은 인간이 미지의 영역에 발을 디디고, 길이 아닌 길 위에서 스스로 해답을 찾아 나설 때 비로소 완성된다.
AI가 코드를 작성하고 또 다른 AI가 검증하는 동안, 우리는 "왜 이 코드를 짜야 하는가", "이 작업이 전체 흐름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가"라는 메타적 질문을 던져야 한다. 이 '작업 너머 작업'을 바라보는 시야야말로 기계가 흉내 낼 수 없는 인간만의 장기이다.
그리고 느리지만 고요한 다음 질문이 남아있다. "인간이 설 자리는 과연 없는 걸까?" 이 질문은 결국 우리가 스스로에게 얼마나 자율권과 책임을 부여하느냐에 달려 있다. AI에게 맡길 것은 맡기되, 목적과 경계를 명확히 설정하고, 결과를 해석·비판하며 새로운 목표를 세우는 일은 오롯이 우리에게 남겨둘 때 비로소 균형이 맞춰진다.
그때까지, 나는 오늘도 조금 늦게 도착한 인간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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