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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로그/관찰일기

'기쁨의 총량'에 대한 생각

by 공튼이 2025. 6. 17.
가끔 그런 순간이 있다. 맛있는 걸 실컷 먹고 난 다음, 입안은 텁텁하고 배는 더부룩하다. 하루 종일 좋아하는 콘텐츠를 보고 나면 오히려 멍하다. 웃었는데 피곤하고, 즐겼는데 허전하다. 쾌락이 꼭 할부로 청구되는 것 같은 기분이다. 처음엔 단순히 많이 먹고, 많이 쉬어서 그런 줄 알았다. 하지만 자꾸만 비슷한 패턴이 반복된다.

“이상하다… 분명히 기분 좋았는데 왜 찝찝하지?”

그 순간 문득 떠오른 생각이다.

혹시 기쁨에도 일일 권장량이 있는 건 아닐까?

어릴 적 사탕 가게 앞에서 느꼈던 설렘을 기억한다. 저 알록달록한 색깔이 어떤 맛을 낼까 상상하며 고르던 시간. 처음 입에 넣는 순간의 그 달콤함은 정말 특별했다.

 

1. 즐거움은 항상 처음이 제일 세다

처음 경험하는 쾌락은 언제나 강렬하다. 처음 본 영화가 가슴을 쳤고, 처음 마신 커피가 심장을 두드렸다. 하지만 두 번째부터는 이미 익숙해진 영역이 된다. 우리 뇌는 새로운 자극에 강하게 반응하지만, 동시에 그 자극에 아주 빠르게 적응한다. 그래서 우리는 자연스레 더 강한 자극을 찾게 된다. 더 달콤한 사탕, 더 매운 음식, 더 자극적인 콘텐츠. 쾌락은 첫 경험에서 가장 강하게 튄다. 적응이 빠른 것도 뇌의 생존 전략이기 때문이다. 결국, 자극의 크기를 키워가는 이 반복은 어느 순간 기쁨 대신 피로를 가져온다.
 

2. 무뎌진 혀, 닫힌 마음

즐거움만 좇다 보면 금방 지친다. 쾌락을 마신 뒤엔 어김없이 고요하거나, 어딘가 쓸쓸한 뒷맛이 따라온다. 마치 커피를 너무 진하게 내려버린 것처럼. 처음 한 모금은 향긋했지만, 끝맛은 떫고 쓰다. 욕심을 조금만 덜 냈다면 더 좋았을 텐데... 그래서일까, 무언가를 덜어내야 오히려 기쁨이 다시 살아나는 순간이 있다. 
 
절제는 재미의 적이 아니라, 기쁨을 살리는 친구 같은 존재다. 쾌락이 모자란 게 아니라, 쾌락을 느끼는 감도가 무뎌져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너무 많은 장면을 훑고, 너무 많은 정보를 마시면 내 안의 감각은 조용히 스르르 문을 닫는다. 그럴 땐 바람 부는 산책로, 오래된 노래 한 곡, 익숙한 골목길이 무색무취했던 하루를 다시 열어준다. 즐거움은 ‘갖는 것’이 아니라, 느낄 수 있는 상태에서 비로소 시작된다.
 

3. 비어있어야 채워지는 것들

우리가 가끔 멈춰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새로운 쾌락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미 곁에 있는 기쁨을 다시 느끼기 위해서다. 쾌락 자체보다 중요한 건,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내면의 여유다. 입안이 자극에 오염되면 어떤 맛도 제대로 느낄 수 없듯, 마음도 여백이 있어야 좋은 것들이 스며든다. 이는 예전에 이야기했던 "잊음은 손실이 아니라 여백을 확보하기 위한 투자" 란 말과도 어딘가 닮아있다.

가끔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여유롭게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감각을 쉬게 하고, 다시 작은 것들에 마음이 움직일 수 있게 하는 시간. 새로운 기쁨을 얻기 위한 시간이라기보다는, 이미 있던 것들을 다시 소중히 여길 수 있는 시간. 절제는 재미를 방해하는 게 아니라, 기쁨을 더 깊이 누릴 수 있게 도와주는 도구일지도 모른다.
 

망각의 힘

클라우드 용량은 무한에 가깝고, 검색창 하나면 지난 대화까지 소환되는 세상이다. 우리는 "잊어버리면 큰일 난다"는 불안을 안고 스크랩과 스크린샷을 끝없이 축적한다. 퇴근전 끝내지 않은 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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