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1월, 자취생 시절부터 근 15년 가까이 빵생활을 함께 해온 2구짜리 토스터 필립스 경 께서 지병이 악화되어 마침내 소천하시고 말았다. 그저 대체품을 하나 구하려던 찰나, 베이글도 구울 수 있을 만큼 넓은 거였으면 좋겠고, 이런저런 자잘한 희망사항들이 모이다 보니 어느덧 '발뮤다'까지 눈높이가 올라가 버렸다. 유사 오븐형 토스터기들 비교한 유튜브 실험 영상도 찾아보다가 유독 이 브랜드만 빵이 타지 않아서 급 관심 갖게 되었다. 이중 기본 모델과 Pro 모델이 있어 구입 전 상당한 기간 고민이 됬다. 할인 전 가격과 비교하면 Pro가 6만 원이 비싸고, 일반 모델들만 할인가로 구매가 가능했다. 그런데 Pro 모델에만 있는 한 가지 기능에 대한 호기심이 선택을 이끌었다. 그게 바로 살라만더 모드.
이 기능에 대한 정보는 당시에도 그리 많지 않았다. 게다가 "오븐 모드로도 170도 이상 쓸 일이 잘 없더라"는 지인의 후기까지 들으면서, 약간의 모험이 되는 선택이었다. 가격도 할인 없이 거의 40만 원. 그 돈이면 만물의 기본단위인 국밥(GB) 이 떠오르고, '그냥 빵 하나 굽는 데 이 돈을 써야 하나?' 싶은 마음도 들었지만, 이왕 새로 사는 거, 오래 쓸 수 있는 거, 안 되는 기능 있으면 아쉬울세라… 할인 혜택 따윈 1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발뮤다 더 토스터 Pro (이하, 뮤다군)를 쿨하게 구입하게 된다.

첫 만남, 그리고 다른 경험
뮤다군은 일반적인 토스터와는 확연히 달랐다. 빵을 넣고 바로 굽는 단순함 대신, 5cc짜리 전용 컵으로 물을 넣고 모드를 설정한 뒤 기다려야 했다. 처음에는 번거롭게 느껴졌지만, 결과물을 보고는 이해할 수 있었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한, 냉동실에 오래 보관되어 있던 식빵의 시간을 뒤로 되돌려 놓은 것 같았다. 무엇보다 놀라운 점은 빵이 탄화(!)되는 일이 거의 사라졌다는 것이다. 모드별로 화력을 알아서 제어를 하다 보니, 돌려놓고 잠시 어딜 다녀와도 잘 구워져 있었다. 이는 틀림없이 실용적인 장점이다.
예상치 못한 수혜자
우리 집엔 타르트 귀신이 하나 산다. 이 귀신은 꼭두새벽, 에어프라이어도 돌리지 않은 냉동 타르트를 데우지도 않고 먹어치운다. 이 아이가 뮤다군이 오고 나서는, 타르트를 찾지 않고 식빵 한 장에 포션 버터 한알을 올려서 지 스스로 토스트를 굽고 있다. 토스트 한 장의 달라진 식감이 아이의 식습관까지 바꾼 셈이다.
프로 모델만의 특별함
앞서 말했듯 프로 모델에는 살라만더 모드라는 기능이 있다. 아래쪽 히터를 끄고, 상단 히터의 화력을 좀 더 쓸 수 있는 기능이다. 처음엔 어떤 용도로 쓰게 될지 궁금했지만, 개인적으로 정말 잘 쓰고 있는 기능이다.
당장 시도해 볼만한 레시피는 크림브륄레 만들기이다. 투명한 갈색 유리처럼 바삭하게 굳어 있는 캐러멜 층을, 스푼이 '톡' 하고 깨트렸을 때. 그 아래엔, 대조적으로 부드럽고 차분한 바닐라 커스터드가 기다리고 있어야 한다. 설탕이 녹으려면 상당한 고열이 필요한데… 그 와중, 아래 커스터드가 녹아선 안되니 강하고 집중된 상단 화력이 필요했다.

피자도 상당히 잘 구워낸다. 파베이크 화덕피자 생지 위에 소스를 바른 다음 치즈를 얹어 구워냈는데, 단순히 치즈를 녹이는 수준에 그치지 않고 살라만더 모드로 마이야르 반응을 어느 정도 이끌어낼 수 있었다.

현실적인 한계들
물론 단점도 분명했다. 빵 하나 굽는 데 4~5분 정도 걸리는 시간적 부담, 상당한 크기로 인한 공간 점유, 청소의 번거로움. 그리고 무엇보다 '토스터'라는 이름으로 치기에는 부담스러운 가격이 그것이다. 아침에 급하게 나가야 할 때는 가끔 필립스경이 그립다. 빵 넣고 레버 내리면 끝이었던 그 단순함 말이다. 물을 넣고, 모드를 선택하고, 기다리는 과정이 때로는 사치스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특히 한 조각만 구우려 할 때 느끼는 미안함이란. 마치 고급 레스토랑에서 물 한 잔만 주문하는 기분이다. 크기도 만만치 않다. 기존 토스터 자리에 놓기엔 너무 크고, 전용 공간을 마련해야 했다. 주방이 넓지 않은 집이라면 분명 고민될 부분이다.
화력 면에서도 아쉬운 점이 있다. 에어프라이어와 같은 컨벡션 오븐 대비, 같은 온도일 때 실제 체감 화력이 떨어지는 부분이 있다. 오븐모드에 250도 설정이 있긴 하지만, 토스터는 대류가 따로 일어나지 않는 환경이니, 실제 화력은 에어프라이어 200도 세팅과 비슷한 느낌이다. 토스터 치고는 고화력이다 정도. 그래서 Pro에 살라만더 모드가 추가된 게 아닌가 싶다.
일상 속 작은 변화들
한동안 매일 식빵 한 장씩을 구웠다. 지금도 사용률이 높다. 그리고 주말이나 아침에 조금 여유가 있는 날이면 자연스럽게 손이 간다. 이 기계는 '있으면 은근 자주 쓰게 되는' 그런 존재다. 무엇보다 식빵 소비량이 많이 늘었다. 예전에는 식빵 한 봉지가 냉동실에서 몇 주씩 머물기 일쑤였는데, 이제는 일주일이면 동이 난다. 아이도, 나도 빵에 대한 기대치가 달라진 탓이다. 그냥 배고픔을 때우는 음식에서, 조금은 기다려볼 만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바뀌었다.
식빵 외에도 크루아상, 베이글, 바게트 등 다양한 빵류를 시도해 보게 되었다. 예전 같으면 "굳이?"라고 생각했을 빵들도 새로운 경험이 된다. 마트에서 빵 코너를 지날 때의 시선도 달라졌다. 이거 마르기 전에 다 먹어야 할 거 같아 지나쳤었는데, 이 정도는 얼려서 보관해도 충분히 살리지 않을까? 하는 안심이 든다.
5개월간 사용 후의 솔직한 평가
몇 달이 지난 지금, 이 구매가 현명했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확신이 서지 않는다. 분명한 건 후회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아니, 정확히는 후회할 여지를 주지 않을 만큼 잘 쓰고 있다는 표현이 맞겠다. 사실 가격 대비 만족도를 따지자면, 솔직히 애매하다.
40만 원으로 할 수 있는 다른 일들을 생각해 보면 여전히 사치스러운 선택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매일 아침 마주하는 소소한 행복을 돈으로 환산하기는 어렵다. 무엇보다 이 토스터가 가져다준 가장 큰 변화는 '기다림'에 대한 관점이다. 빨리빨리 해치우던 아침 식사가 조금은 여유롭고 의식적인 행위가 되었다. 물을 넣고, 모드를 선택하고, 기다리는 그 몇 분이 하루를 시작하는 작은 의식 같은 것이 되었다.
15년 전 자취방에서 처음 만난 토스터 필립스경과 같이, 뮤다군 또한 언젠가 추억이 될 것이다. 하지만 그때까지는, 매일 아침 조금씩 특별한 시간을 선사해 줄 것 같다. 그리고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 있는 투자였다고, 지금은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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