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인공지능 연구자 이안 굿펠로우(Ian Goodfellow)가 제안한 GAN(Generative Adversarial Network)은 단순한 기술 혁신을 넘어, 우리에게 본질적인 질문을 던진다.
진짜란 무엇인가?
창조와 모방의 경계는 어디에 있는가?
우리는 무엇을 근거로 어떤 것을 ‘진짜’라고 믿는가?
1. 이 얼굴은 존재하지 않는다.
https://thispersondoesnotexist.com
(접속해서 새로고침을 할 때마다, 새로이 생성된 가짜 얼굴이 출력된다.)
사진속 사람을 본 적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마냥 낯설지 않다. 그냥 외국인들 사진. Linked in 같은데서 봤을법한 얼굴사진, SNS 사진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이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GAN 이 latent vector 를 통해 만들어낸 픽셀 덩어리, 그저 그럴듯함만을 학습해 낸 통계적 환영이다. 꽤나 자연스러운 나머지 잠시 멈칫했다.
2. 이 그림의 작가는 없다.
Edmond de Belamy, Obvious, 2018 – Wikipedia
Edmond de Belamy - Wikipedia
From Wikipedia, the free encyclopedia Painting created by artificial intelligence Edmond de BelamyArtistObvious (collective)Yearc. 2018MediumInk printSubjectMale portraitDimensions70 cm × 70 cm (27.5 in × 27.5 in) Edmond de Belamy, sometimes refe
en.wikipedia.org
2018년, 뉴욕 크리스티 경매장에 한 초상화가 걸렸다. 낙찰가는 43.2만 달러, 작가 이름은 ‘에드몽 드 벨라미’였다. 하지만 이 그림은 인간의 손이 아닌 GAN이 수천 장의 인물화를 학습해 그린 것이다. 작가가 없다. 그림만 있다. 우리는 다시 묻게 된다.
“작가 없는 그림도 예술인가?”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 남긴 흔적도 기억될 수 있는가?”
3. 이 영상은 진짜가 아니다.
딥페이크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인터넷을 떠도는 유명인(!)의 영상. 목소리, 표정, 입모양까지 정교하게 따라 한다. 그는 말하고 웃고, 설득력 있게 연설하지만—그건 진짜가 아니다. GAN을 기반으로 한 딥페이크 기술이 만들어낸 조작이다. 가짜는 점점 현실과 구분되지 않게 되고, 그럴수록 ‘진짜’라는 기준은 흐려진다.
GAN은 콘텐츠를 단지 생성하는 기술이 아니다. 그것은 ‘현실감’이라는 감각 자체를 재정의하는 알고리즘이다. GAN은 신경망의 구조나 수학적 정의로 설명할 수 있다. 그러나 앞서 소개해 드린 이 세 가지 사례는 그것보다 더 직관적으로, 더 깊이 말해준다.
존재하지 않는 것들이 어떻게 진짜처럼 보일 수 있는가. 우리는 왜 그것들을 쉽게 믿어버리는가. GAN은 단순히 현실을 흉내내는 도구가 아니다. 그것은 존재의 경계를 흐리며, ‘진짜’라는 믿음을 조용히 다시 쓰는 기술이다.
4. 거울 속에 마주 선 두 존재
GAN의 구조는 놀랍도록 간단하면서도 철학적이다. 두 개의 신경망이 서로를 마주보며 끝없는 경쟁을 벌인다. 생성기(Generator)는 가짜 데이터를 만들어내고, 판별기(Discriminator)는 그것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구분하려 든다. 처음에는 둘 다 서툴다. 생성기는 아무렇게나 데이터를 뱉어내고, 판별기는 쉽게 속임수를 간파한다.

하지만 이 과정이 수천 번, 수만 번 반복되면서 기묘한 일이 일어난다. 생성기는 점점 더 정교한 위조자가 되어가고, 판별기는 점점 더 예민한 감별사가 된다. 마치 거울 앞에 선 두 예술가처럼, 서로를 비추며 훈련하고 성장한다. 결국 생성기는 판별기조차 속이는 수준에 이르고, 그 순간 '진짜처럼 보이는 가짜'가 완성된다.
5. 복제 없는 창조의 역설
GAN이 흥미로운 점은 직접적인 복제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특정한 이미지를 기억해서 그대로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데이터로부터 '그럴듯함'의 패턴을 학습한다. 존재하지 않는 사람의 얼굴, 가상의 풍경, 무작위의 데이터로 만든 현실 같은 이미지들. 이것들은 분명히 가짜지만, 때로는 진짜보다 더 진짜처럼 보인다.
이는 우리를 불안하게 만든다. 만약 진짜와 구분할 수 없는 가짜가 존재한다면, 우리가 '진짜'라고 부르는 것들의 근거는 무엇인가? GAN은 기술적 도구를 넘어서 존재론적 질문을 제기하는 철학적 장치가 된다.
6. 우리 안에 숨겨진 GAN
사실 GAN의 원리는 인간에게도 낯설지 않다. 대부분의 인공지능 개념이 인간의 관찰에서 출발했듯이, GAN 역시 우리 안에 이미 존재하는 메커니즘을 모델링한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의 '되고 싶은 나'는 생성기와 같다. 끊임없이 새로운 버전의 자신을 만들어낸다. 반면 사회적 기대, 타인의 시선, 내재화된 기준들은 판별기 역할을 한다. 그것이 '진짜 나'인지 '가짜 나'인지 판단하려 든다. 우리는 이 두 힘 사이에서 수없이 연습하고 수정하며 '타인에게 진짜처럼 보일 나'를 만들어간다.
역설적이게도, 우리는 나를 흉내 낸 끝에 나를 닮아간다. 누구나 마음속에 GAN을 품고 있다. 다만 그것이 코드가 아닌 감정과 욕망의 언어로 쓰일 뿐이다.
7. 위조된 서사가 만드는 새로운 현실
GAN의 능력은 이미지를 넘어 글, 음악, 목소리까지 확장되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GAN에서 진정 놀라는 것은 단지 그것이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이 아니다. 그 위조물이 기억처럼 느껴지고, 감정처럼 반응되며, 서사처럼 소비되기 때문이다.
가짜 뉴스가 진짜 기억을 만들어내고, 존재하지 않는 인물의 이야기가 실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 자체가 점점 GAN의 원리로 작동하는 것처럼 보인다. 진짜와 가짜의 경계가 흐려지는 시대, 우리는 무엇을 근거로 현실을 믿어야 할까?
8. 기술 너머의 거울
GAN은 단순히 '진짜 같은 가짜'를 만드는 기술이 아니라, '진짜란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되묻는 거울과 같다. 어쩌면 진짜와 가짜의 구분이 애초에 불가능했다는 사실일지도 모른다. 모든 것이 모방이고, 모든 모방이 창조이며, 모든 창조가 다시 모방의 대상이 되는 순환 속에서, 우리는 새로운 존재론을 모색해야 하는 것일까. GAN은 단순히 진짜를 만드는 기술이 아니라, ‘진짜란 무엇인가’를 되묻는 기술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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