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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실험실/수와 존재

수와 존재: 작은 마법들

by 공튼이 2025. 6. 10.

숫자는 '말' 대신 스스로를 이야기하는 언어다. 몇 줄 수식을 끄적었을 뿐인데, 완벽한 대칭이 나타나거나 모양이 빙글빙글 순환한다. 언뜻 장난처럼 보이지만, 그 뒷면에는 분수의 순환소수와 모듈 방정식처럼 단단한 논리가 숨어 있다.

1. 순환의 마법

어느 오후, 칠판에 142857 에 2 를 곱해보았다. 285714 가 나왔다. 숫자들이 그대로인데 자리만 바뀌었다. 3 을 곱하니 428571, 4를 곱하니 571428. 마치 숫자들이 돌아가고 있었다. 이것이 1/7 의 순환마디였다는 걸 깨달았을 때, 분수와 순환소수라는 중학교 개념이 갑자기 칠판 위에서 살아 움직이는 마술처럼 느껴졌다.

142857 × 1 = 142857
142857 × 2 = 285714
142857 × 3 = 428571
142857 × 4 = 571428
142857 × 5 = 714285
142857 × 6 = 857142

1/7 = 0.142857142857...

 

2. 완벽한 거울

11111 를 제곱해보자. 123454321 이다. 1이 하나 더 늘어난 111111 을 제곱하면 12345654321. 완벽한 대칭이다. 1 이 n 개 반복된 수를 제곱하면 항상 123...321 의 회문 형태가 나온다. 우연이 아니다. 이 뒤에는 (10^n-1)/9 의 제곱이라는 명확한 공식이 있다.

 

11² = 121
111² = 12321
1111² = 1234321
11111² = 123454321
111111² = 12345654321

일반형: ((10ⁿ-1)/9)² = 123...n...321

 

3. 자기복제의 신비

한쪽에 625 를 제곱해보자. 390625 가 나온다. 마지막 세 자리가 625, 즉 자기 자신이다. 이런 수를 자기복제수라고 한다. 76 의 제곱은 5776, 376 의 제곱은 141376. 모두 끝자리에 자신을 품고 있다. n² ≡ n (mod 10^k) 라는 모듈러 산술의 언어로 설명되는 현상이다.

625² = 390625 (끝 3자리 = 625)
76² = 5776 (끝 2자리 = 76)
376² = 141376 (끝 3자리 = 376)

조건: n² ≡ n (mod 10ᵏ)

 

4. 제곱속에 피어난 원본

297 을 제곱하면 88209 가 된다. 이 다섯 자리 수의 자릿수를 반씩 나누어 88 과 209 를 더하면 다시 297 이 나온다. 이 숫자들은 자신의 제곱 속에서 자신을 재생산하는 신비로운 성질을 가지고 있다.

297² = 88209
88 + 209 = 297

55² = 3025
30 + 25 = 55

일반형: n² = ab...cd일 때, ab... + cd = n

 

5. 카프레카 과정의 수렴

종이에 아무 네 자리 수나 하나 적어보자. 대신, 각 자릿수 숫자가 달라야 한다. 대충, 7543 이라고 하자. 이 숫자들을 큰 것부터 작은 것 순으로 배열하면 7543, 작은 것부터 큰 것 순으로 배열하면 3457 이다. 7543 에서 3457 을 빼면 4086 이다. 이 과정을 4086 에 반복하면 8640 - 0468 = 8172. 다시 반복하면 8721 - 1278 = 7443. 계속하다 보면 결국 6174 에 도달한다. 그리고 6174 로 이 과정을 반복하면 7641 - 1467 = 6174 로 자기 자신이 나온다. 어떤 네 자리 수를 택하든, 모든 자리가 같은 수(1111, 2222 등)가 아닌 이상 이 과정은 반드시 6174 로 수렴한다. 백묵으로 칠판에 그어가는 거의 모든 길은 6174로 통한다.

7543 → 7543 - 3457 = 4086
4086 → 8640 - 0468 = 8172
8172 → 8721 - 1278 = 7443
7443 → 7443 - 3447 = 3996
3996 → 9963 - 3699 = 6264
6264 → 6642 - 2466 = 4176
4176 → 7641 - 1467 = 6174
6174 → 7641 - 1467 = 6174 (수렴)

  ※ 예외: 1111, 2222, 3333 등 모든 자리가 같은 수는 0000이 되어 과정 중단

6. 나르시시스트 수의 완벽함

153 이 수는 꽤나 자아도취적이다. 1³ + 5³ + 3³ = 1 + 125 + 27 = 153. 각 자리 숫자를 세제곱해서 더하면 자기 자신이 나온다. 이런 수를 나르시시스트 수, 혹은 암스트롱 수라고 한다. 371도 마찬가지다. 3³ + 7³ + 1³ = 27 + 343 + 1 = 371.

153 = 1³ + 5³ + 3³ = 1 + 125 + 27
371 = 3³ + 7³ + 1³ = 27 + 343 + 1
407 = 4³ + 0³ + 7³ = 64 + 0 + 343

일반형: n자리 수에서 각 자리의 n제곱 합 = 원래 수

 

7. 분수의 기묘한 약분

칠판 왼쪽에 16/64 라는 분수를 적어보자. 분자와 분모에서 공통으로 나타나는 6 을 멋대로 지워버리면 1/4 이 된다. 그런데 16/64를 약분하면 정말로 1/4 이다. 우연의 일치처럼 보이지만, 이런 성질을 가진 두 자리 분수는 딱 네 개뿐이다. 16/64, 19/95, 26/65, 49/98. 수학에서는 이를 digit-canceling fraction 이라고 부른다.

16/64 = 1/4 (6을 지워도 성립)
19/95 = 1/5 (9를 지워도 성립)
26/65 = 2/5 (6을 지워도 성립)
49/98 = 4/8 = 1/2 (9를 지워도 성립)

 

8. 판디지탈 곱셈의 조화

이 곱셈의 특별함은 1 부터 9 까지의 숫자가 각각 정확히 한 번씩만 사용된다는 점이다.

39 × 186 = 7254 

 

위는 판디지탈 곱셈의 예시를 보여준다. 9 개의 숫자를 완벽히 배분해서 하나의 의미 있는 식을 만들어낸다.

다른 예로 아래와 같은게 있다.

4 × 1738 = 6952

 

9. 스미스 수의 균형

이번엔 85 라는 수를 적고 각 자리 수를 더해보자. 8 + 5 = 13 이다. 85 를 소인수분해하면 5 × 17 인데, 이 소인수들의 자릿수를 더하면 5 + 1 + 7 = 13 이다. 원래 수의 자릿수 합과 소인수들의 자릿수 합이 같다. 이런 수를 스미스 수라고 한다. 소인수 분해가 거울이 되는 셈이다.

85 = 5 × 17
자릿수 합: 8 + 5 = 13
소인수 자릿수 합: 5 + 1 + 7 = 13

666 = 2 × 3 × 111 = 2 × 3 × 3 × 37
자릿수 합: 6 + 6 + 6 = 18
소인수 자릿수 합: 2 + 3 + 3 + 3 + 7 = 18

 

10. 숫자들의 우정과 자족 - 친화수와 완전수

220 과 284. 이 두 수는 특별한 관계다.

220 의 진약수들을 모두 더하면 284 가 되고, 284 의 진약수들을 모두 더하면 220 이 된다.

서로가 서로의 약수 합으로 이루어진 친화수다.

220의 진약수: 1, 2, 4, 5, 10, 11, 20, 22, 44, 55, 110
합: 1+2+4+5+10+11+20+22+44+55+110 = 284

284의 진약수: 1, 2, 4, 71, 142
합: 1+2+4+71+142 = 220

 

28은 자신의 진약수 합이 자기 자신과 같다. 이러한 수는 완전수라 부른다. 숫자들의 우정과 자족을 보여주는 예다.

28의 진약수: 1, 2, 4, 7, 14
합: 1+2+4+7+14 = 28

 


이런 숫자들의 성질은 우연이 아니다. 겉보기에 엉뚱해 보여도 조금만 파헤치면 "아, 그래서 그랬군" 하고 끄덕이게 된다. 순환소수와 모듈러 방정식은 중고등학교 수학 시간에 스쳐 지나가지만, 칠판 위에서 현란한 자리바꿈 쇼로 다시 나타나면 논리가 생활감각에 닿는다. 6174로의 수렴처럼 결과가 보장된 과정을 백묵으로 따라가 보면, 생각보다 빨리 패턴 추적에서 증명 욕구로 이어진다.

숫자를 오래 들여다보면 "계산은 멈췄는데 패턴은 계속 잔상처럼 돌아간다"는 느낌이 남는다. 그 잔상이 다시 호기심을 불러, 코드를 짧게 짜보거나 노트를 열어 손으로 증명을 흉내 내게 만든다. 칠판 정리를 하려다 남은 142857×3 = 428571 자국을 보고, "언젠가 내 일상도 저렇게 자연스럽게 순환하고 이어질까?"라는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숫자 놀이는 결국 숫자만의 이야기를 넘어, 사람 마음속 패턴 감각까지 살짝 건드려 놓는다. 복잡한 세상에서 가끔은 이런 작은 장난감을 굴려보는 것도 담백한 관조의 한 방법 아닐까. 칠판 위에서 벌어지는 이 작은 기적들은, 논리와 아름다움이 하나로 만나는 순간을 선사한다. 그 순간 우리는 숫자가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스스로 이야기하는 언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