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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로그/지나간 오늘들

달라진 AI 기술과 조직의 온도

by 공튼이 2025. 8. 12.
연대기는 늘 사건보다 마음의 움직임을 먼저 기록한다. 지난 몇 년의 AI도 그랬다. 사람들은 먼저 놀라고, 곧 기대하고, 조금 뒤에 의심하고, 끝내는 구조를 만든다. 2022년부터 2025년 지금까지—반기마다 달라진 기술과 조직의 온도를 따라가 본다.

 

 

2022 상반기

이미지는 말보다 빠르게 퍼졌다. DALL·E 2의 결과물은 "상상은 파일이 될 수 있다" 는 확신을 시장에 남겼고, GitHub Copilot은 개발자에게 "빠른 퇴근"이란 헛된 꿈을 안겨줬다. 경영진은 효율화각을 재기 시작했다. 실무는 곧바로 질문을 붙였다. “이 코드, 안전한가?” “이 그림의 권리는 누구 것인가?” 멋진 데모는 충분했지만, 보안 리뷰와 라이선스 표기가 업무 목록에 추가된 건 그해 봄부터였다.

 

2022 하반기

ChatGPT가 등장하자 사람들은 곧장 "채팅으로 일한다"는 문장을 입에 올렸다. 회의실에서는 검색, 문서 작성, 고객 응대를 한 번에 바꿀 수 있겠다는 슬라이드가 나왔다. 현장에서는 다른 장면이 펼쳐졌다. 답변은 유창했지만 가끔 틀렸다. 틀린 답이 더 설득력 있을 때가 문제였다. 민감한 문서를 프롬프트에 붙여넣는 습관은 은밀한 누설이 되었다. 경영진의 기대는 대체였고, 실무의 결론은 보완이었다. 챗봇은 바로 사람을 대신하지 못했고, 대신 사람의 어깨 위에 얹혀야 했다.

 

2023 상반기

GPT‑4, 플러그인, 함수 호출. LLM은 더 이상 고립된 텍스트 기계가 아니었다. 도구를 호출하고, 스스로 계획하고, 웹과 ERP를 오가며 작은 오케스트라가 되기 시작했다. 경영진은 ‘자율 에이전트’라는 두 글자에 마음이 갔다. 실무는 권한을 쪼갰다. 호출 범위를 제한하고, 승인 단계를 끼우고, 실패했을 때 되감는 루틴을 만들었다. 기대는 "끝까지 알아서" 였고, 현실은 "정해진 구간만 확실히" 였다. 자율은 욕망이었고, 통제는 설계였다.

 

2023 하반기

RAG가 기본값이 되었다. "우리 데이터로 답하게 하면 된다." 작은 언어모델을 사용한 온프레미스 개발 로드맵을 설명하는 데 저 한줄은 무척 유용했다. 그러나 RAG가 말하는 ‘우리 데이터’는 찾기 쉬운 페이지가 아니었다. 쪼개는 방식, 재색인 주기, 리랭킹, 근거 스니펫—검색의 장치들이 답변의 신뢰를 결정했다. 경영진은 파인튜닝 비용을 아낀다며 기대했고, 실무는 벡터DB 비용과 지연 시간을 예산서에 적어 넣었다. 문서만 붙이면 정확해진다는 믿음은 곧 "평가 세트 없이는 근거있는 오답(!)을 반복한다"는 교훈으로 바뀌었다.

 

2024 상반기

멀티모달이 일상이 되었다. 목소리로 말하고, 화면을 보여주며, 긴 문맥을 한 번에 처리하는 모델들이 등장했다. 콜센터 자동화, 회의록 정리, 현장 지원—그림은 다시 커졌다. 동시에 프라이버시와 합성 콘텐츠 표시는 더 구체적이 되었다. 동의는 체크박스가 아니라 프로세스가 되었고, 레드액션은 기능이 아니라 습관이 되었다. "전부 자동화" 라는 약속은 그렇게 "전부 기록되어야 하는 자동화" 로 수정됐다.

 

2024 하반기

규제가 추상에서 실체가 되었다. EU AI Act의 발효는 시장의 언어를 바꾸었다. 기능 몇 개의 문제가 아니라 역할과 증빙의 문제—모델 제공자, 배포자, 사용자 각각의 의무가 캘린더 위에 날짜로 찍혔다. 경영진은 법무에게 체크리스트를 요구했지만, 실무는 제품 설계와 데이터 거버넌스, 벤더 계약이 함께 바뀌어야 한다고 답했다. 책임은 서류가 아니라 구조라는 사실이다.

 

2025 상반기

에이전트는 "꿈의 자율"이 아니다. "좁고 확실한 자동화"로 자리를 잡았다. 재무 결산의 전표 검증, 보안 티켓의 분류와 우선순위, 운영자의 승인 아래 진행되는 변경 요청—자잘하지만 끝이 명확한 업무 프로세스들에서 동작한다. 현장은 오케스트레이션과 트레이싱에 돈을 썼다. 실패를 되감는 법, 실행을 설명하는 법, 로그를 보존하는 법. 경영진은 사람 개입 없이 끝까지라는 로망을 내려놓았다. 대신 "사람이 더 빨리, 더 안전하게 끝내게 하는" 자동화에 투자하기 시작했다.

 

2025 하반기, 지금

GPAI 의무가 실제로 적용되면서 "안전하다고 믿는다" -> "안전함을 증명한다" 로 기류가 바뀌었다. 시스템 카드, 훈련 데이터 요약, 저작권 대응, 보안성 시험—종이와 코드가 만나는 문턱에서 팀들은 더 자주 같은 문장을 말한다. 에이전트는 여전히 화려한 데모가 가능하지만, 프로덕션에서는 그래프와 상태, 권한과 승인, 롤백과 샌드박스가 먼저 나온다. 요즘의 대중 정서는 아마 이쯤일 것이지 않을까 싶다. 처음의 경탄은 줄었고, 대신 요구가 높아졌다. 마법이길 바라던 마음은 이제 계약과 로그를 원한다.

 

돌이켜 보면 흐름은 단순하다. 2022년의 놀람은 2023년의 도구화로, 도구화는 2023년 하반기의 현실주의로, 현실주의는 2024년의 규제로, 그리고 2025년의 운영과 증명으로 이어졌다. 경영진의 기대는 전체적으로 볼 때 "더 빠르게, 더 넓게" 였고, 실무가 건넨 대답은 "더 구체적으로, 더 안전하게, 그리고 더 설명 가능하게" 였다.

 

연대기의 마지막 문장은 아직 비어 있다. 다만 다음 문장의 첫 단어만큼은 정해졌다. "조금씩" 조금씩 시작해 빨리 평가하고, 실패를 기록하며, 증명 가능한 안전으로 확장하는 것—현실감각과 에이전트의 야망은 이렇게 화해해 간다. 그리고 그 화해의 기록이, 다음 반기 에세이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