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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로그/관찰일기

허무감을 위한 예의

by 공튼이 2025. 8. 6.

짧은 기간 내내 시야를 가득 채우던 몰입이 스위치를 끄듯 갑자기 확 꺼져버렸다. 뭔가 4개월 전과 어딘가 너무나 흡사해서 소름이 돋는다. 난 2주간 빡세게 굴러 목표를 달성했다지만, 예상치 못한 허무감이 훅 치고 들어온다. 생각이 멈추고, 공기가 잠시 비었다. 작게 울리던 "이제 그만"이라는 신호가 들렸다. 머릿속이 조용해지고, 자극이 사라지자 텅 빈 공간이 남았다. '관성'은 정말이지 무서운것 같다. 이제 파도가 지나간 뒤 젖은 모래사장처럼, 그 위에 남은 흔적을 바라보며 그동안의 발자취를 확인할 시간이다.

 

 

1. 허무감에 휩싸일 때일수록 지나온 시간을 정리해 보자. "어느 순간 가장 힘이 솟았는가?", "어떤 대화가 나를 웃게 했는가?", "실패의 싹은 어디에서 돋았는가?" 같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본다. 이런 질문을 통해 놓쳤던 순간과 성장의 계기가 선명해진다. 막연했던 기억을 떠올려 구체화 해본다.

 

2. 캘린더에 "휴식" 두 글자를 일정으로 기록한다. 쉼도 생산성만큼 중요한 가치임을 지난 5~6월 혈액검사를 통해 깨달았다. 기록은 스스로에게 선언하는 일이다. 계획하지 않으면 진짜 쉬지 못한다. 생산성이라곤 전혀 없는 저녁,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며 실성한 듯, 길을 거닐어본다. 구름을 한참 바라본다. '다음 계획'이 떠올라도 살포시 웃으며 놓아준다. Do Not Disturb라고 스스로에게 속삭인다. 비어 있는 시간은 낭비가 아니다. 다음 에너지를 축적하는 시간이다.

 

3. 허무감은 남았다. 그러나 그 빈자리는 내가 확보한 나만의 운동장이다. "다음 챕터로 넘어가야지" 보다 현실적인 하나의 문장이 더 적당하다. 빈 페이지에 깜빡이는 커서가 새로운 단락을 만든다. 오늘은 정확히 20분만 걷도록 할 것이다. 어제의 열띤 러너가 아니라, 오늘의 호기심 많은 산책자로서 거리의 향과 색을 읽는다. 언젠가 또 다른 속도로 달릴 준비가 되면 내 안의 관성이 기꺼이 힘을 보태줄 것이다. 다음 여정을 위해 예를 갖추고 허무함을 온전히 느껴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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