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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과 기억/집밥

조용한 회복의 식사

by 공튼이 2025. 5. 22.

혈압과 편두통으로 고민하던 어느 날, 내 식사의 기준이 바뀌었다. '무엇을 먹고 싶은가'보다 '무엇이 나를 괴롭히지 않을까'를 먼저 생각하게 됐다. 먹는 것부터 다시 돌아봐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때 처음 선택한 것이 보리샐러드였다. 보리는 쌀보다 소화가 느리고 혈당을 천천히 올린다고 했다. 혈관 건강에 좋은 식이섬유도 풍부하다는 말에 기대어, 조심스럽게 삶의 리듬을 되돌려보기로 했다.

 

보리가 잘 안보이는건 기분탓일게다.

 

 

생각보다 조리법은 복잡하지 않았다. 유튜브 보고 따라하면 평타는 친다. 게다가 요즘은 햇반으로도 보리밥이 나온다. 알이 터지지 않도록 은근하게 익혀낸 보리는 씹을수록 고소하고, 속이 편안해지는 맛이었다. 여기에 몇가지 아채를 손질해 넣고, 삶은 병아리콩, 때로는 찐 브로콜리를 더했다. 드레싱은 최대한 심플하게 올리브오일에 레몬즙, 약간의 후추만. 기분에 따라 아보카도나 삶은 달걀을 곁들이기도 했다.

 

보리 외에도 요즘은 귀리나, 퀴노아 등 다양한 대체제가 있다. 저속노화 햇반이라 부르는 것에는 렌틸콩도 들어있다. 이런 곡물과 단백질, 찐 채소로 구성된 한 그릇은 먹는 데 오래 걸리지 않으면서도 속을 천천히 채워주는 훌륭한 식사 같다. 무언가를 '관리'하기 위해 먹는 음식들은 대개 맛과 거리가 멀고 욕구불만을 부추긴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런 종류의 샐러드는 달랐다. 단순하지만 싱싱했고, 자극적이지 않지만 충분했다.

 

무엇보다 좋았던 건 먹고 나서 몸이 편안하다는 감각이었다. 즉각적인 변화는 아니었지만, 서서히 편두통의 강도와 빈도가 달라졌고, 아플 것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저녁이 늘어났다. 그리고 다시 '내가 나를 챙기고 있구나' 싶은 조용한 안도감을 느꼈다.

 

보리샐러드는 그런 음식이다. 작지만 식생활의 중요한 변화를 가져다 주었다.